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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 - 사춘기 청소년를 둔 부모에게 전하는 한마디 : 청소년 인성교육을 위한 제안








사춘기 없는 아이는 없다

 

이상적인 아이가 어떤 아이일가?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 주는 아이일까? 아니면 자립심이 강해서 스스로 척척해내는 아이일까? 사춘기의 정점에 있는 중2 아이들을 보면 금새 알아볼 수 있다. 마치 얼굴에 나 사춘기니까 건드리지 마세요.’라 써 붙여놓고 다니는 것처럼 티가 난다. 반항 끼가 얼굴에 철철 흘러넘친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머리스타일이 다 똑같다. 옷도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서 보면 그 아이가 그 아이처럼 보인다.

 

부모 세대의 사춘기의 특징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교복을 입기도 했지만 잠시 교복입는 것을 풀어준 때도 있었다. 자유라도 만끽하고 싶은 양 튀어 보이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이상하게 자르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지금은 탈색하고 염색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전매특허였다. 그게 반항이라 생각했고 자유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아이들을 부모들이 바라보는 것이나 지금의 부모세대의 사춘기 모습을 본 부모나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세월이 많이 흘러 정보가 흘러넘치고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에게 촌스럽다고 말한다.

 

엄마, 머리가 그게 뭐에요. 정말 촌스럽다니까.”

아빠, 그렇게 옷 입고 다니면 같이 안 다닐거야.”

 

오히려 부모가 볼 때는 하얗게 화장을 한 얼굴엘 입술만 빨갛게 칠한다. 잘 입었다고 입은 옷은 오히려 튀어 보이는 것이 눈에 거슬릴 뿐인데 자기들이 생각할 때는 무척이나 화장을 잘하고 옷을 유행에 뒤처지지 않게 입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때도 입었던 삼선 체육복은 아직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인가 보다. 이런 것들을 보면 반항감에 젓어 있던 중2의 모습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별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자유로워지고 싶어하고 때론 늘어지게 자고 싶기도 하고 친구 아니면 죽는 줄 아는 모습은 여전하다.

 

지금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죠.’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진도 나가기가 어렵다. 옷 입는 센스나 화장기술은 아이들보다 촌빨날릴지 모르지만 생각만큼은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세련되야 한다.








 

부모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한 모임에서 여러 어머니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침을 튀겨가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일까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못했다. 둘 중에 하나다. 남편이야기 아니면 아이들 이야기다. 오늘의 주제는 중2를 둔, 즉 사춘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며 죽는 소리를 한다. 대부분 중2 여자아이를 둔 어머니들이다. 요즘 들어 치마가 더 짧아졌다는 둥 디팡(디스코팡팡의 줄임말)을 타러 멀리까지 간다는 둥 성적이 잘 안나왔다는 둥.... 걱정 어린 말투로 아이들에 대해서 누가 질 새라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고 직접 지도하는 아이들인데 어머니들의 걱정이 너무 앞서 나갔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여자 아이들이기에 걱정이 앞서서 이야기하느라 미쳐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자신들의 15세 때의 일들을 기억 못하는 것 같아 한 마디 거들었다. 슬쩍 끼어들어 이야기의 페이스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이어 일격을 가했다.

 

어머님들, 사춘기 때 가방 속에 미니스커트 하나씩 넣어가지고 다니지 않으셨어요?”

 

까르르 웃어 넘어간다. 내가 그 아이들을 봤을 때 그냥 사춘기의 한 단편일 뿐이었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사춘기의 왕성한 혈기를 발산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너무 심각하게 보지 말자는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보면 문제 속에 휩싸이게 될 뿐이다. 어두움을 바라보면 어두움만 보일뿐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두움은 안보이고 빛만 보이게 된다.






 

감정에 충실한 아이들

우리의 중2 아이들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꿈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디서 저런 생각들이 나오는 걸까?’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내가 그들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나를 치료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다. 멈출 줄 모르는 에너지 발산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진다. 그들은 현실이라는 무게 아래 짓눌려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인생의 무게가 그들을 누르고 있다. 부모들은 조금이라도 이 무게를 줄여주려고 할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부모들이 이러저러하게 길을 가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인생의 무게는 누가 어떻게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춘기가 없는 아이는 없다. 그 사춘기를 힘들게 넘길 것이냐 아니면 조금 덜 힘들게 넘길 것이냐가 있다. 살아온 나날들이 달라 대처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 부모세대가 겪어 온 사춘기와 그 근본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인생 선배로서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급하게 아는 것을 알려주려 할 때 탈이 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아이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넣어주려 할 때 분명하게 거부한다. 너무 큰 나무 아래에서는 작은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늘 그림자에 가려있다. 가만히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쌓아 올린 거성과도 같은 성취를 보고 아이들은 부모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나무의 그림자로 인해 연약한 나무로 자라난다. 해방되기 위해 때론 거센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부모들은 재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아하, 사춘기가 왔구나, 이제 독립을 위해 조금씩 준비해야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냥 나도 모르게 귀찮고 만사가 싫은 아이들이다. 흥미도 없다.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면 장래의 꿈도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소화도 시키지 못할 부모의 경험과 지식을 먹인다면 탈이 나는 법이다. 부모의 경험과 지식을 알려주되 방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의 문제다. 우리의 아이들은 예민하다. 가식으로 하는지 아닌지 금방 눈치 챈다. 어떤 아이는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척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아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생각하고 더욱 삐딱선을 탈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들이 마음에 결심을 하고 가자. ‘사춘기 없는 아이는 없다.’, 너무 서둘러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쑤셔 넣듯 알려주지 않겠노라고, 서투른 방법으로는 아이들을 잃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중요한 중2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격적 장애를 겪게 둘 수 없다. 한 때의 실수로 인해 벗어던질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아주는 삶의 지혜도 때로는 필요하다.




-킹메이커교육연구소 조덕형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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