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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 & 사랑

13:1


비전과 사랑은 함께 간다. 비전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은 함께 간다. 비전과 사랑은 같은 눈을 가졌다. 비전은 깊이 보고 멀리 보고 전체를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평범 속에서 비범을, 연약함 속에서 강함을, 작은 만남 속에서 영원한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순간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를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깨닫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 속에 감추인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는 능력이다. 비전을 본 사람은 말하게 되고 모험하게 되고 행동하게 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눈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 속에서 비전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비전을 품게 된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재능과 은사를 보게 된다. 그 재능과 은사를 알려주고 개발하게 하려는 열망이 생긴다.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다. 사랑의 눈으로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셨다.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예수님은 그들이 그물을 던지는 것과 깁는 것을 보셨다.(4:18,21)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 내리는 것을 보셨다.(5:5)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셨다. 작은 사람이 천을 이루며 무명의 존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유명한 존재가 되며 지역적인 인물이 세계적인 인물이 되며 비천한 사람이 귀하게 되는 비전을 보셨다. 쓸모없는 인물이 복음을 위해 쓸모 있는 인물이 되는 비전을 보셨다.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1:42) ‘흔들리는 갈대라는 뜻인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시몬이 초대 교회에서 반석 같은 존재인 베드로가 되는 비전을 보신 것이다. 시몬에게서 비전을 보신 예수님은 시몬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믿음으로 선포하셨다. 베드로에게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양육하고 훈련하셨다. 베드로 안에 있는 가능성을 개발하셨다. 베드로를 귀하게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했다. 사랑은 관심이다. 관심은 민감함이다. 민감함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깊이 보고 멀리 보게 도와줄 수 있다. 민감함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예민함이다. 영적 인도자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민감함이다. 민감함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와 아름다움을 함께 발견하고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이다.(5:29)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꾸고 보호하게 된다. 소중한 것을 투자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안에 있는 보화가 보이기 때문에 생명을 투자하는 것이다. 삼중고를 겪는 어린 헬렌켈러를 만난 설리반은 헬렌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 가엾은 그녀 속에 감추인 가치를 발견했다. 그래서 평생 헌신했다. 예수님을 위해 옥함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을 알았다. 예수님의 고귀함을 알았다. 그래서 자기 전 재산이요 생명 같은 옥함을 깨뜨릴 수 있었다.


사랑은 헌신이다. 상대방 안에 감추인 보화가 드러날 때까지 헌신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림이요 인내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그 씨앗 속에 감추인 가능성을 보면서 오래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는 인내다.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고 했다.(고전13:4,7)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그 사람들안에서 비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전체를 보는 안목이 있을 때 생기는 여유다. 작은 아들에게 유산을 주어 먼 나라로 보낸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비전이 있었다. 전체를 본 것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아들의 인생 경험과 성숙이 깊어질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실패까지 허락한 것이다. 실패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아들에게 잠재된 아름다운 성품을 믿었다. 그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여유였고 지혜였다.

존 폴웰의 말처럼 사랑이란 뿌리와 날개를 주는 것이다. 뿌리는 소속감이요 날개는 자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뿌리를 내린다. 서로 상대방에게 소속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날개를 준다.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억압하거나 속박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다. 성장할 자유, 가능성을 실현할 자유, 자기를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성장하도록 그 사람에게 실패할 자유를 모험할 자유를 주는 것이다. 제자들을 양육하실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뿌리와 날개를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주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이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날개를 달아 주셨다.


제자들은 그 사랑 안에서 마음껏 성장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줄 알았다. 바다 위를 걷는 모험을 할 줄 알았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것은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품에서 일어난 사랑의 역사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단점도 사랑하셨다. 그들의 장점에 초점을 두고 그들을 개발시키셨다. 그들의 장점이 최대로 드러나게 하셨기에 단점마저도 아름답게 드러났다. 예수님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으셨다. 윌리엄 워즈워드는 사랑은 최선인 것을 더욱 좋은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기에 그들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드셨다.


사랑은 상대방을 현재 모습 그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모습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면서 이미 그렇게 변한 듯이 대하는 능력이다. 괴테는 한 개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는 사람 대하듯이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비전과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자 사랑하면 비전을 보게 된다.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라. 비전을 보면서 사랑하게 된다. 당신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 마크 트웨인의 말을 기억하라.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소인배들은 언제나 그렇게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다이신 역시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가까이 하라. 당신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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