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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 & 긍정적 자아상

잠언 16:18

 

비전이란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는 능력이다. 사람은 인정해 주는 대로 변하고 믿어 주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정받으려고 하는 갈망은 인간의 뿌리 깊은 갈망이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비전을 품고 그 사람을 인정해주고 믿어 주면 그 사람은 놀랍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대하신 방법이다. 예수님과 처음 만났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참 초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비전을 보셨다. 세계를 변하게 하는 사도가 될 비전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유능하고 큰 인물인 듯이 대하셨다. 그 결과 그들은 유능하고 큰 인물이 되었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때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거울과 같다.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본다. 창과 같다. 자신의 영혼의 창으로 다른 사람을 본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도 지금처럼 존재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세상을 통해 모든 것을 본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관계형성의 열쇠다.

승리하는 삶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긍정적인 자아상이다. 긍정적인 자아상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감이 있으면 인생을 활기차게 살게 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랄프 에머슨은 자신감은 최고의 성공비결이다.”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자부심의 심리학]을 쓴 나다나엘 브랜든은 자부심과 생산성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지적했다. 자신을 좋게 생각할수록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성이 높을수록 자신르 더 좋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을수록 인생을 잘 컨트롤하게 된다. 사건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스 처치도 자부심은 우리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부심은 도덕성 효율성 대인관계 그밖에 인간의 모든 주요 활동을 좌우한다. 따라서 자부심이 변하면 인간의 개별적인 행동은 자동적으로 변할 것이다.”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열등감이다. “뿌리 깊은 영성을 출간하고 사람들에게 드러난 나에게 처음 마음처럼 끝까지 교만하지 말고 겸손의덕을 쌓으라고 충고하는 분들이 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분들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며 살고 있다. 우리는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관자는 모든 일은 계획으로 시작되고 노력으로 성취되며 오만으로 망친다.”고 말했다. 잠언 16:18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한다.

그런데 교만과 함께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비하다. 자기 멸시다. 자기 학대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열등의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사실 나도 동인한 고민을 한다. 교만이라는 문제를 극복하는 것보다 열등의식이 더 고통스럽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판과 상관없이 여전히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작은 모습 때문에 괴로워할 때가 많다. 열등의식은 평생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이다. 지나치게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나쁘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스피노자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했다.


비전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눈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의 생각은 높고도 깊다. (55:9) 하나님의 생각과 눈은 함께 간다. 하나님은 생각이 높기 때문에 멀리 보시며 생각이 깊기 때문에 깊이 보신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크고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나는 어린아이라 말할 줄을 모릅니다.”하고 말하기 전에 이미 그를 열방의 선지자라고 부르셨다.(1:5,6) 하나님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6:5)하고 고백한 이사야를 위대한 선지자로 만드셨다. 예수님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사람들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아야한다. 그 때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대로 본다는 것이다.”하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채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많은 존재다. 우리 안에는 거인이 잠자고 있다. 천재성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다는 소속감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하실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로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모습대로 변하려면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포기한 것처럼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포기한 것처럼 현재 모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포기할 줄 안다는 것은 개방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포기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개로운 미래를 향해 자신을 여는 것이다. 현재 모습에 집착하는 한 새로운 미래는 없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거 생각의 결과다. 오늘 새로운 생각을 선택해야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길이 열린다.


엘리에너 루스벨트는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 있고 더 위대하고 더 가능성이 충만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은 새롭게 변할 수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쓴 변화 경영 전무가 구본형씨는 되돌아 올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간 인생은 없다. 어느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포기하고 하나미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향해 자신을 던지라 당신도 깜짝 놀랄 만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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