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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8

 

 

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신음하고 절망하는 당신의 백성을 위한 놀라운 구원 사역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 사역의 일환으로 매 기회마다 당신이 특별히 선택하신 한 인간을 준비하십니다.

구약시대에 모세는 이렇게 해서 쓰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궁중에서 40,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도합 80년 동안 모세를 훈련시켜 마침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곧 모세를 통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세의 역할은 장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신 모습을 우리는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속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마음가짐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소명 사건은, 즉 부르심의 사건은 구속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성도들이 오늘날 진정으로 행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은 모세처럼 준비된 자를 통해 펼쳐진다.

즉 하나님의 계획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량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자신의 생을 사랑하며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 처절히 기도하는 훈련된 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광야 생활은 결코 시간을 헛되이 소모하는 허망의 연속이나 좌절로 실의에 빠진 나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흘 길 건너편에 있는 동족의 탄식을 듣고 있었으며 40년 이라는 긴 세월을 자기 백성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때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의 경험은 하나님의 소명이 어떠한 자에게 임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 - 6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사전 통보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에게 나타나실 때도(6:1-5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요셉에게 나타나실 때에도(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내가 너에게 갈테니 단단히 준비하고 있으라는 언질은 없었습니다. 호렙산에서의 하루, 평소와 다름없는 일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즉 저 애굽에서 그렇게 갈구하는 백성들의 외침에 대답 한마디 없던 그 분이, 40년 동안 말없이 계시다가 갑자기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 갑작스러운 현현임에 틀림없으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분명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운 뜻 안에서 미리 계획된 대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진 임재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연단되기를 기다리셨고 때가 되어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역의 완성에, 때에 맞추어 십자가에 몸을 내어 맡겼듯, 하나님은 정확히 제 시간에 맞추어 역사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임재하십니다. 현재의 내가 불러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분은 내가 상상한 인간적 기준의 시간을 넘어서 하나님이 정하신 정확한 시간에 전혀 예고 없이 오십니다.

내가 쓰러지고 낙망하여 인간적인 야망을 모두 포기한 바로 그 시간, 하나님의 새로운 시각에 맞추어 살 것을 요구하시며 오십니다.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거룩하고, 웅장하고, 엄청난 권능을 몰고, 나의 대적들을 쳐부수기 위해 오시기보다는 초라하고, 볼 것 없는 한적한 들판의 떨기나무 가운데 오셨습니다.

즉 부와 권력과 사치로 번쩍이며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대도시 복판이 아니라 내가 간과하고 무시하는 삶의 일터에서 내 가슴을 밀치고 오십니다. 그리곤 역사 속에서 실체로 활동하시고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밝히 보여주시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역사적 부름에의 응답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지상의 의무로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불신앙을 나누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성실히 일한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신다

목자로 일하다 소명을 받은 다윗 (삼상 16;6-13) 아모스(1:1) 어부로 있다가 부름 받은 제자들(4:18-22)등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실한 사람을 요구하심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모세의 부르심을 세심히 보아야 합니다.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모세가 당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쳤다고 말합니다. 또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하여 호렙산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일회적으로 한 번 양을 친 것이 아니라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축을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약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양을 돌보기 위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사자나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또한 좋은 목초지를 선정하고 양들을 그리로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임무인 것입니다.- 목자들을 향하여...

우리 성경에는 광야 서편으로 양무리를 인도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원어로 보면 목초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을 장차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모세의 사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의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지도자로 훈련되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이런 사람들은 칭찬받는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맡겨진 일들에 대해서 정성과 사랑을 다해 일을 처리하고 서로를 대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들을 부르시어 하나님의 전 역사에 동참시키신 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곧 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란 삼위일체의 제 2위인 성육신하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로 표현되어 지고 있는데요. 여기서 떨기나무는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가시덤불을 가리킵니다.

이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긴나무로서 곧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현 생활을 상징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무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본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보시고 부르시고 계십니다.(3,4) 그리고는 5절에 가까이 하지 말고 너의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5)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불러 일을 맡기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크게 역사합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하고는 일하기가 싫습니다. 말도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보다 잘나서? ... 맞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모습이 망가질수록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라고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가까이 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말은 죄악 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예표적 의식으로서 피흘림 있는 제사 제도를 제정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그 제사의 절정이요 완성으로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신발은 인간의 타락된 품성과 행위를 상징합니다. 즉 죄악 된 장소를 두루 다니고 죄악된 행위를 하느라 더러워진 신에는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먼지나 때가 끼여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신은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땅을 밝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1) 허물과 죄로 오염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수 없으며 그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속 사람을 강건하게 무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2) 인간 스스로의 재능, 자존심 등을 과감히 버리고 겸손히 순복하는 자세를 지니라는 뜻입니다. -고대에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고난도 각오하라는 뜻입니다.(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4)거룩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경외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5)부패한 인간은 중보자의 피(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가 없이는 감히 거룩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결론. 말씀을 정리해보면,

1. 하나님의 뜻은 모세처럼 준비된 자를 통해 펼쳐진다.

2. 하나님은 성실히 일한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신다

3.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불러 일을 맡기신다.

라고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2009년도 우리 산위에교회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흥을 사모하고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신을 벗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데요... 거기에는 많은 의미들이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죄와 관련된 의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큰 부흥 앞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영적 대각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하고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개인과 민족을 살리시는 모습을 성경에서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항상 그래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동일한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장의 후반부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세 가지 명령입니다. "발의 신을 벗어라. 나를 믿으라. 그리고 가라." 믿고 가라. 명령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둘째는 너의 지팡이와 함께 하리라.

셋째는 가나안 땅을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벌써 한 사람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모세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다만 바른 응답을 원하십니다.

신을 벗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과거를 묻지도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라 하십니다. 그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순종하는 우리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여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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