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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짐승의 심판과 멸망

요한계시록 19:11 - 19:21



예수님이 백마 타고 오셔서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거짓 선지자)을 사로잡아 불 못에 던져 죽이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검으로 죽여 새들이 그 시신을 먹게 합니다.  


11절 예수님이 백마 탄 전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충신(신실)과 진실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21장 5절; 22장 6절) 공의로운 판단으로 대적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모든 것을 신실하고 진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하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실하고 진실하고 공의로운 예수님의 성품은 거짓과 허영으로 인간을 미혹하는 사탄과 대조되며, 그것은 오늘 교회가 닮아야 할 성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행실의 진위 여부를 그 기준으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심판하며 싸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모두 현재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의 사역이 영원한 것이며 대적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전투와 심판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2~16절 불꽃 같은 눈으로 세상을 감찰하시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참 주권자이십니다.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시는 그분의 흰 옷은 대적자들의 피로 물들었고, 그분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검과 같은 심판의 말씀이 나올 것입니다(히브리서 4장 12~13절).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이 제 눈에 옳은 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대적들을 말씀의 검으로 치고 철장으로 다스릴 것입니다(시편 2편 9절). 이날에 주의 신부인 교회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이 심판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집중적으로 보기 원합니다.

  본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세 가지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심판의 모습 역시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적자들과의  전투에  참여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 본문은 사 11:3-5 을 반영하는 것으로 1:16과 병행된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인 말씀은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도구이다. 더욱이 말씀을 통한 심판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니골라당이 회개치 않을 경우 반드시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2:12, 16).

   2.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 본문은 시 2:9의 반영으로 본서  2:27;12:5에서 병행되고 있다. '철장으로 다스리심'은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은 물론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3.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 본문은 사 63:1-6을 반영한다. 본문에 나타난 포도 수확의 모습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짐승을 비롯한 모든 대적자를 완전히 파멸시키심을 시사한다. 


17,18절 기쁨이 넘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19장 7~9절)에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당신의 백성들을 초대하시더니, 짐승들을 심판하는 잔치에는 새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먹이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았던 자들의 시신이 될 것입니다. 잘 키웠다고 세상 앞에 자랑하던 우리 자녀들이 새들의 먹이가 되지 않을 만큼 주 앞에서도 자랑할 만합니까?


19~21절 두 짐승은 ‘산 채’로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지시고(그래서 영원히 고통당하고, 20장 10절), 그를 따르던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은 검으로 죽여 새가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이젠 ‘용’(사탄)만 남았습니다.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은 성도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오늘의 승리로 정결하게 자신과 말씀을 지킨 자만이 영원한 승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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