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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

에베소서 6:1-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는 가부장적 제도가 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위가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효도의 문제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절대적 복종의 형태로 해결되었습니다. 요즈음은 그런데 요기서 문제시 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서구적인 가정 형태로 변화하게 됨으로서 개인주의화 될 뿐 아니라 가정의 구심점이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시대적 변천 가운데 우리 성도들의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효도의 문제를 가지고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효도는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효도관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절대적 순종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 안에서라는 제한적 효도를 가르칩니다. 바리새인들은 부모에 대한 효의 문제를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결부지어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폐단은 효보다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우선순위에 두었기에 결과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요구되는 곳에서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7:11) 성도는 주님의 영광을 최우선적인 삶의 목적으로 삼되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부모에게도 효를 다해야 합니다. 여기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된다면 온전한 신앙생활일 될 수 없습니다.

 

2. 효도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는 계명을 단순히 성도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명이란 말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누구나 반드시 효를 실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성도가 효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이 효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우선되는 덕이기에 바울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3. 효도는 축복의 근원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언급했습니다.(3) 바울의 이 진술은 십계명의 내용에 근거한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부모를 공경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5:16)는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나 바울의 진술은 내용상 동일합니다.

즉 내용을 요약하자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이 복 있는 사람에 대해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고 노래한 것과 같은 형통의 축복이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 같은 축복이 효를 행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사를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유함이 없이는 순종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온유함이란 인간의 의지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성도에게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된 효도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참된 효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온유한 심령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모에 대해 소홀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형통의 복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효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효를 행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사람 앞에서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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