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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1:3-8

 

골로새 : 사도 바울 시대에 골로새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개 시장 도시. 에베소서에서 동쪽 160km 지점에 위치. 에바브라가 당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혼합주의적인 이단들의 위험성에 대해 보고하자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

바울이 에베소에 3년이나 머물며 복음을 전하였으나 직접 골로새에 간 적은 없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사람들이 각 지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소개함으로서 여러 지역교회가 생겨났다. 그 중 골로새 지방에서 온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에바브라도 바울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었고,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골로새의 복음화를 위해 힘썼다.

 

성도(2) : 하나님과 화해한 자,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 자, 말씀의 비밀을 아는 자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골로새서는 이단이 성행했던 골로새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록된 서신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썼는데요. 이 서신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을 때 이 세상의 거짓된 지식과 가치관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잘못된 철학, 유대적 의식주의, 천사숭배의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영육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므로 이러한 이단 사상이 불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초대교회 당시보다도 어둡고 부정적임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욱 타락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것이 어떤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이 무엇인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세계에 산재한 종교들은 제각기 추구하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불교는 생노병사의 고뇌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하며,

유교는 인의예지를 추구하며 이슬람교는 정복과 인간의 행위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며 그 실천적 덕목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중요시 합니다. 이 세 가지 덕목은 어떠한 종교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 특유의 덕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3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감사하였으며 본문에서는 믿음 사랑 소망을 가짐에 대하여 골로새 교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 사랑 소망은 무엇일까요?

 

1. 믿음

우상숭배의 땅인 갈데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친 믿음으로 인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믿음이란 앞으로 얻으려는 것들을 현실화 시키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 것과 같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확신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그 손의 못자국을 보고야 믿었던 도마(20:24-25)처럼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믿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고후 4:18에서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는 모두 떨어지는 꽃과 아침 이슬처럼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삶만이 영원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떠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올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14:6)

그러면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로마서 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보고 들음으로써 지신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견고하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2. 사랑

사랑이 없는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실로 사랑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등 인간의 삶은 사랑으로 엮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경에서도 사랑을 제일의 덕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3:13)

그러면 사랑은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요?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사랑은 본질상 이기적인 것이요 상대적인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16)

아무런 조건없이 상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셔서 죄인들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5:8)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상 명령으로 부탁한 말씀입니다. (22:37-40)

 

3. 소망

사람은 누구나 제 각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귀, 공명, 영화 등 세상적인 소망은 모두가 헛된 것에 불과하며(1:2) 이 세상에는 참된 소망이 없습니다. 성도의 영원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여 주십니다. (15:13)

이러한 사실을 두고 일찍이 시편 기자는 찬미하기를 나의 극락의 하나님이라고 하였고(43:4)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16:11) 순교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죽어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소망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망이 참된 소망일진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참된 소망이 없습니다.(2:11, 12 ; 살전 4:13) 이제 우리 성도들은 골로새 성도들처럼 참되고 영원한 소망을 하늘에 쌓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 사랑 소망 이 셋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절대 불가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구원과 관계가 있고, 사랑은 실생활과 관계가 있으며 소망은 영광스러운 유업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모두를 소유하며 풍성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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