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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으로 살기

하박국 2 : 1 4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물질로 삽니까? 물질 주도적으로 사는 그 수준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건만 떡으로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돈이 좀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어쩌다가 돈이 좀 작아지고 가난하고 어려워지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합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 철학까지도 완전히 물질의 소유에 의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고 깨닫고 공부하고 그것을 큰 기쁨으로 알고 그리고 무엇을 좀 더 알았을 때 그는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할 뿐 아니라 지식적으로 자기만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취미로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분으로 삽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feel로 삽니다. 감정이 가는대로 삽니다. 기분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기분파, 좀 점잖게 말하면 낭만파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고집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기로 사는 것입니다. 죽을만한 일이 있어도 억울해서 못죽습니다. 오기로, '내가 두고보자, 내가 반드시 이길 거다' 그런 집념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매일성경 QT본문으로 전도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1절에 헛되다는 말이 4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한 번 더 나오는데요...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합니다. 물질도, 지식도, 기분도, 고집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로 사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 상황을 훌쩍 넘어서서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기원전 7세기 말에 패망해 가는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 하박국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예언의 말씀이 현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여러 가지 면으로 교훈을 제공하기에 충분하고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죄성 가운데 형성했던 사회 전반적인 죄악상이나 현대인들이 만들고 있는 사회 현상이 동일하고, 그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활동은 현대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다른 예언자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으로 예언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다양한 신앙적, 실존적 문제들에 관해 하나님께 감히 질문하고 그분으로부터 성실한 응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질의, 응답을 살펴보며 이 속에서 하나님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그 뜻을 알아가길 원합니다.

기원전 7세기 말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강포(1:2)와 간악, 패역, 겁탈, 변론과 분쟁(1:3)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언자 하박국은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죄악에 물들지 않고 홀로 의로움을 지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악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죄악을 범하는 가운데 나라가 극도로 쇠퇴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 앞에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 질문은 1:2~4절에 언급되는데 그 핵심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셔서 이렇게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만드십니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좋다. 내가 유다의 악한 사람들을 갈대아의 전쟁에 능한 군인들에게 붙여서 그들로 하여금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게 만들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1:5~11)

 

하나님의 이러한 대답에 대해 하박국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박국은 아무리 유다의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살았어도 그들이 이방신들을 섬기는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 사람들보다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아니 하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찌 유다 백성보다 더 악한 바벨론 사람들을 통해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십니까?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다른 해답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 하박국은 파숫군처럼 성루에 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응답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1:12~2:1)

 

이러한 하박국의 당찬 모습에 대하게 되신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2:2~4)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대답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열방이 민족들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하박국에게 유다의 죄인들을 심판하고 난 바벨론 백성들이 그들 자신들의 여러 가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점을 상세하게 보여주십니다.(2:6~20)

 

하나님께서 결국에 바벨론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하박국은 이제 더 이상 공의의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에 따라 온 만민을 다스리신다는 점을 확신한 가운데 곧 다가오게 될 바벨론 군대의 침입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는 확신을 보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3장에 언급되는 하박국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좁은 신앙관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참된 믿음의 모습을 깨닫고 우리 삶 가운데 적용해야 할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원하시는 바(2:1-4) : 믿음

 

2:1절에 의하면 하박국은 파숫군처럼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또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아직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시는 방법에 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무지함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신앙인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자세는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1.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인내하고 끈기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한 다음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인내함의 결과로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보상이요 선하신 응답입니다.(7:7, 40:31)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는 하박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시요, 하나님은 자신의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시는 자유자이시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한된 인간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방식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때에 활동하시도록 강요하거나 감언이설로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기다리면서 인내를 배우고 아울러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28:10-14)

 

2-4절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보다 더욱 죄가 많은 바벨론 백성을 통해 선민 유다 백성을 심판하신다는 소식을 접한 하박국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관해 의혹을 품으며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새로운 대답을 달라고 간청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의 첫 부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묵시의 내용을 흙판에 새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내용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거나 오해하는 것을 막기 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래에 펼쳐나가실 사건들에 관한 예언을 판에 명백히 새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3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묵시가 실현되는 때가 인간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시일보다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자세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점이 성경에 언급되는 신앙적 위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었습니다.

정착할 땅과 많은 후손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때를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베푸실 축복들에 관해 명확한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분께서 언젠가는 반드시 선하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따라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참다운 믿음의 기본을 가르치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게 이루어져도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을 붙잡고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믿음 생활의 기본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4절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말하는 의인은 누구인가?

구약성경에서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원적인 의미를 본다면, 그는 진실만을 말하고,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기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불행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나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 안에서 올바르게 이룩되도록 힘쓰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의인의 삶에 바탕이 되는 정신이야 말로 삶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인내하며 살려는 자세라고 말합니다.

4절에서 언급하는 믿음은 견고하다. 인내하다. 의지하다. 확고하다. 성실하다.’라는 어원적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믿음으로 자신들의 삶이 바뀐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통해서 눈먼자가 눈을 뜨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죽었던 자녀가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이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면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공의와 인자를 생각하며 그분을 의지해야 될 줄로 압니다.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내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고대의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613계명을 주었고,

다윗은 시편 15편에서 15계명으로 함축시켰으며,

미가는 3개로, 다시 이사야는 두 개로,

이윽고 하박국은 단 하나로 소개했다

이 말엔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

하박국서 2장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에 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품었던 하박국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보다 철저하게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소개하였습니다.

3장에는 하박국의 보다 신앙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2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른 악인을 사용하시지만, 정하신 때가 되면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도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박국은 비록 바벨론이 유다의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막강한 군대를 형성하여 유다를 침공하러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소수의 의인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하나가. 어느 날 한가한 시간에 손자 손녀를 앞에 쭉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보니까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고민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늑대 두 마리가 있단다. 그런데 늑대 한 마리는 아주 악한 늑대로서 화를 잘 내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거만하고 거짓말하고 교만하고 아주 못된 그런 늑대 한 마리가 있고, 또 한 마리의 늑대는 기뻐하고 평안하고 사랑하고 소망을 주고 인내하고 아주 온유 겸손한 그런 복스러운 늑대 두 마리가 있단다. 이 두 마리가 항상 싸운다."

항상 싸운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가만히 있다가

"그래요 내 마음에도 늑대 두 마리가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아이가 묻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도 늑대가 있나요?" "그럼, 두 마리가 있지"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어느 늑대가 이겼나요? 두 마리가 싸워서 누가 이겼나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겼지."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십니까? 좋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못된 것에다가 관심을 두고 거기에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내가 먹이를 주는 대로 그 늑대가 이긴다고 아주 지혜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이라는 먹이는 주면 의심이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을 먹이로 주면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진노를 믿고 그리고, 보십시오. 저 앞에 있는 구원을 믿고 약속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있습니까? 아는 대로 진실하십시오. 모르는 것이 있습니까? 믿고 따라가십시오.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거기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이거든 믿고 순종하십시오.

 

유다나 바벨론이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을 생각하며 우리 개인의 삶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삶 속에서 죄악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변화를 유지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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