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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 세 희



(1)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3)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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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 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낙   원   구

 

  주택: 444,1―                             197×. 9. 10

  수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김불이 귀하

  제목: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철거 지시


  귀하 소유 아래 표시 건물은 주택 개량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 따라 행복 3구역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어 서울특별시 주택 개량 재발 사업 시행 조례 제15조, 건축법 제5조 및 동법 제42조의 규정에 의하여 197×. 9. 30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명합니다. 만일 위의 기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 대집행법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강제 철거하고 그 비용은 귀하로부터 징수하겠습니다.

   철거 대상 건물 표시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구조          건평          평

                                     끝

                                         낙 원 구 청 장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말이 없었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 그림자가 시멘트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마당을 덮었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통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방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식사를 끝내지 않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부엌 바닥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쳤다. 나는 동사무소로 갔다. 행복동 주민들이 잔뜩 몰려들어 자기의 의견들을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들을 사람은 두셋밖에 안 되는데 수십 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공고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아파트 입주 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 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 주위는 시장 바닥과 같았다.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한데 뒤엉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만났다. 아버지는 도장포 앞에 앉아 있었다. 영호는 내가 방금 물러선 게시판 앞으로 갔다. 영희는 골목 입구에 세워놓은 검정색 승용차 옆에 서 있었다. 아침 일찍 일들을 찾아 나섰다가 철거 계고장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누군들 이런 날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 옆으로 가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둘러메었다. 영호가 다가오더니 그것을 넘겨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영희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몇 사람의 거간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아파트 입주권을 팔라고 했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책을 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표지를 쌌기 때문에 무슨 책을 읽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영희가 허리를 굽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장이가 간다.” 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했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고 있었다. 내가 식칼을 받아 반대쪽 못을 뽑았다. 영호는 어머니와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빨리 떼어 간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놓인 표찰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영희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희들이 놀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별 걱정을 안 했을 거다.”

 어머니가 말했다.

 “스무 날 안에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니. 이제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지.”

 “입주권을 팔려고 그래요?”

 영희가 물었다.

 “팔긴 왜 팔아!”

 영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파트 입주할 돈이 있어야지.”

 “아파트로도 안 가.”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그냥 사는 거야. 여긴 우리 집이다.”

 영호는 성큼성큼 돌계단을 올라가 아버지의 부대를 마루 밑에 놓았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런 이야길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내준 철거 계고장을 막 읽고 난 참이었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

  “그건 우릴 위해서 지은 게 아녜요.”

  영호가 말했다.

  “돈도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영희는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오빠? ”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 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던 영희가 고개를 돌렸다. 영희는 울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희는 잘 울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울지 마, 영희야.”

 “자꾸 울음이 나와.”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응.”

 그러나, 풀밭에서 영희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손으로 영희의 입을 막았다. 영희의 몸에서는 풀 냄새가 났다.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고기 굽는 냄새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묻고는 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지?”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빨리 하면서 말했다.

 “고기 굽는 냄새란다. 우리도 나중에 해 먹자.”

 “나중에 언제?”

 “자, 빨리 가자. ”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거짓말!”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

 어머니가 우뚝 섰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너 매 좀 맞아야겠구나.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나도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싶어.”

 “빨리 가자. ”

 “엄마는 왜 우리들 옷에 주머니를 안 달아 주지? 돈도 넣어 주지 못하고, 먹을 것도 넣어 줄 게 없어서 그렇지?”

 “아버지에 대해 말을 막 하면 너 매맞을 줄 알아라.”

 “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알아.”

 나는 말했다.

 “수백 번도 더 들었어. 그렇지만 이젠 속지 않아.”

 “엄마, 큰오빠는 말을 안 들어.”

 영희는 부엌문 앞에 서서 말했다.

 “엄마 몰래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대. 나는 안 갔어.”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영희를 흘겨보았다. 영희는 또 말했다. 

 “엄마, 큰오빠가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다고 말했더니 때리려고 그래.”

 영희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영희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영희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영희를 때려주고 나는 후회했다. 귀여운 영희의 얼굴은 눈물로 젖었다. 우리는 그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철거 계고장을 마루 끝에 놓고 책을 읽었다. 우리는 어버지에게서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 동안 충분히 일했다. 고생도 충분히 했다.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아버지보다 더 심한 고생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공장에서 이상한 매매 문서가 든 원고를 조판한 적이 있다. 그 내영의 일부를 짜기 위해 나는 열심히 손을 놀렸다. ‘婢 金伊德의 한 소생 奴 今同 庚寅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金今伊 丁卯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德水 己巳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存世 辛未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永石 癸酉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鐵壽 丙戌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今山 戊子生.’  나는 그때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판을 짜고 다음 판을 짜나가다 겨우 알았다. 노비 매매 문서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열흘 동안 같은 책을 조판했다. 그 열흘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들이 최하층의 천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은 같았다. 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엄마를 잘못 두어 이 고생이다. 아버지하고는 상관이 없단다.”

 어머니는 장남이 나에게만 말했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나에게 전한 것이다. 천년을 두고 우리의 조상은 자손들에게 이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씨종의 자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대에 노비제는 사라졌다. 증조부 내외분은 아무 것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해방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두 분이 한 말은 오히려 “저희들을 내쫓지 마십시오.”였다.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유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늙은 주인은 할아버지에게 집과 땅을 주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면에서는 할아버지나 증조부나 같았다. 증조부대까지는 선조들이 살아온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나 할아버지대에는 그것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교육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집과 땅을 잃었다.

 “할아버지도 난장이였어?”

 언젠가 영호가 물었다. 

 나는 영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좀 큰 영호는 말했다.

 “왜 지난 일처럼 쉬쉬하는 거야? 변한 것이 없는데 우습지도 않아?”

 나는 가만 있었다.

 영희는 손수건을 꺼내 두 눈에 대었다 떼었다. 아버지는 계속 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뒷집 명희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에 파셨어요?”

 “십칠만 원 받았어요.”

 “그럼 시에서 주겠다는 이주 보조금보다 얼마 더 받은 셈이죠?”

 “이만 원 더 받았어요. 영희네도 어차피 아파트로 못 갈 거 아녜요?”

 “무슨 돈이 있다구!”

 “분양 아파트는 오십팔만 원이구 임대 아파트는 삼십만 원이래요. 거기다 어느 쪽으로 가든 매달 만오천 원씩 내야 된대요.”

 “그래 입주권을 다들 팔고 있나요?”

 “영희네도 서두르세요.”

 어머니는 괴로운 얼굴로 서 있었다 어머니를 명희 어머니가 다그쳤다.

 “저희는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영희네가 돈을 해준다면. 집이야 도끼질 몇 번이면 무너질 테구.”

 영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괴었다. 커도 마찬가지였다. 계집애들은 잘 울었다. 내가 영희 옆으로 다가갔을 때 영희는 장독대 바닥을 가리켰다. 장독대 시멘트 바닥에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한다’고 씌어 있었다. 집을 지을 때 남긴 낙서였다. 영희가 웃었다. 우리에게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랑에서 돌을 져왔다. 그것으로 계단을 만들고, 벽에는 시멘트를 쳤다. 우리는 아직 어려 힘드는 일을 못 했다.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우리는 며칠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떼를 지어 동네를 돌았다. 그때만은 더러운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도 울음을 그쳤다. 윽박지르는 주인의 기세에 눌린 개들도 짖기를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온 동네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평화스러워져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풍기는 냄새가 창피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들과 악수할 때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너 봤지?”

 내가 물었다.

 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어.”

 영희가 말했다.

 그때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사람은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우리 동네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크게크게 손뼉을 쳤다. 다음 사람은 먼저 사람이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겠다고 하니 구청장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러이러한 나랏일을 하겠으니 그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또 손뼉을 쳤다. 우리도 따라 쳤다. 커서까지 나는 그때 일을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아주 진하게 나의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 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또 있겠니!”

 어머니가 말했다.

 “누구 말씀이세요?”

 영호가 물었다.

 “명희 엄마 말이다. 얼마나 고마우냐. 십오만 원을 대줘 건넌방 전셋돈을 빼 줬잖니.”

 “영희 엄마.”

 명희 어머니는 담 너머에서 말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럼요. ”

 어머니가 말했다.

 “어떻게든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 돈이 보통 돈이우.”

 “알고 있어요. 명희 생각을 하면 가슴이 메어져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명희 언니. ”

 영희가 소리쳐 불렀었다.

 “놀러 와. 우리 집에 놀러 와.”

 “새 집이라 좋지?”

 “응.”

 “네가 장독대에 써놓은 거 지우지 않으면 너희 집에 놀러 가지 않을 거야.”

 “지울 수가 없어.”

 “왜?”

 “세멘이 굳어져서 못 지워.”

 “그럼 난 안 가.”

 영희는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명희를 만났다. 그는 방죽 오른쪽은 숲이었다. 거기 앉아 있으면 숲 사이로 인쇄 공장의 불빛이 보였다. 그 곳 공원들은 밤중에도 일을 했다.

 “네가 약속하면 허락할 테야.”

 명희가 말했다.

 “무슨 약속?”

 내가 물었다.

 “넌 저 공장에 나가면 안 돼.”

 “미쳤어? 난 저 따위 공장엔 안 나가.”

 “정말이다? 약속했어.”

 “그래. 약속했어.”

 “그럼, 만져 봐.”

 명희는 나에게 가슴을 맡겼다. 아주 작은 가슴이었다.

 “네가 처음야.”

 명희가 말했다.

 “내 가슴을 만져본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나는 왼팔로 명희의 어깨를 안고 오른손으로 그애의 가슴을 만졌다. 동그스름한 가슴이 따뜻했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명희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애의 입김이 귀밑에 느껴졌다.

 “말 안 할게.”

 “동생들한테도 말하지 마.” 

 “말 안 해.”

 “네가 비밀을 지키고, 아까 한 약속을 지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줄 테야.”

 “정말이지?”

 “정말야.”

 “지금 다른 데 만지면 안 되니?”

 그런데, 명희는 만날 때마다 힘이 없어 보였다. 어떤 때는 정신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왜 그러니?”

 나는 걱정이 되었다.

 “너 어디 아프니?”

 “아니.”

 “그럼 왜 그래?”

 “우리 집 밥은 먹기가 싫어.”

 “왜?”

 “질렸어.”

 “그럼 넌 죽어.”

 “죽고 싶어.”

 “명희야, 난 저 따위 공장엔 안 나갈 거야. 공부를 해서 큰 회사에 나갈 테야. 약속해.”

 “배가 고파.”

 작은 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뭐가 먹고 싶니?”

 내가 물었다.

 명희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애는 나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말했다.

 “사이다, 포도, 라면, 빵, 사과, 계란, 고기, 쌀밥, 김.”

 명희는 나의 손가락 하나를 마저 짚지 못했다. 그때의 명희에게는 그 이상의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명희가 자라면서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었다. 그애가 어느 날 핼쑥해진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애로서는 마지막 인사였다. 어머니는 명희가 집에 올 때마다 배가 불러 있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명희는 음독 자살 예방 센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싫어! 엄마! 싫어!” 독약 기운에 빠져 명희는 소리쳤다. 성장한 명희는 마지막 순간에 어렸을 적 일들 속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애가 남긴 예금 통장에 십구만 원이 들어 있었다.

 “십오만 원야요.”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우선 건넌방 사람들을 내보내세요.”

 어머니는 돈을 받아들었다. 아무 말도 못 했다.

 “헐릴 집이라는 걸 알면서 세 들어올 사람이 있겠어요?”

 “그래서 그래요.”

 “모진 소리 더 듣지 말고 우선 나가겠다는 사람은 내보내세요.”

 “이게 어떤 돈인데!”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했어.”

 영희가 말했다.

 “큰오빠도 알았지?”

 “그만둬.”

 영희가 기타를 쳤다. 나는 벽돌 공장 굴뚝 위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나의 라디오는 고장이 났다. 며칠 동안 나는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지 못했다.

 나는 명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밀어줄 힘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아버지는 같은 또래의 사람들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우리 식구들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이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아버지가 늙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는 스스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체념과 우울에 빠졌다. 의욕은 물론 주의력과 판단력도 줄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이다. 이 일들만 해온 아버지가 갑지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서커스단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의 조수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우리들도 아버지를 성토했다. 아버지는 힘없이 물러섰다. 꼽추는 멍하니 앉아 우리를 보았다. 꼽추는 눈물이 핑 돌아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부대를 메고 일을 찾아나갔다. 그 날 저녁이었다.

 “얘들아!”

 어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아버지의 음성이 이상해지셨어.” 

 “왜 그러세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안 했다.

 “약방엘 다녀와야겠다.”

 어머니가 봉당으로 내려섰다.

 “백반을 사와.”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아주 짧은 혀가 안으로 말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머니가 히비탄 트로키라는 약을 사 왔다.

 “백반은 안 나오고 이게 더 좋은 약이래요. 이걸 빨아 잡수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아버지는 그 일 이후 말을 잘 안 했다. 혀가 안으로 말린다고만 했다. 잠을 잘 때는 혀를 이로 물었다.

 “아버지는 너무 지치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알겠니? 이젠 아버지를 믿지 마라. 너희들이 아버지 대신 일해야 한다.”

 어머니가 울었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했다. 고무 골무를 끼고 인쇄물을 접었다. 나는 겁이 났다.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출발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명희는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아주 쌀쌀했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보호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역․공목․약물․해판의 과정을 거쳐 정판에서 일했다. 영호는 인쇄에서 일했다. 나는 우리가 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호는 먼저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했다. 가구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 공자에서 일하는 영호를 보았다. 뽀얀 톱밥 먼지와 소음 속에 서 있는 작은 영호를 보고 나는 그만두라고 했다. 인쇄 공장의 소음도 무서운 것이었으나 그곳에는 톱밥 먼지가 없었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우리의 팔목은 공장 안에서 굵어갔다. 영희는 그때 큰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우리가 고맙게 생각한 것은 환경이 깨끗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영희는 하늘색 빵집 제복을 입고 일했다. 영호와 나는 유리창 밖에서 영희가 일하는 것을 보았다. 영희는 예뻤다. 사람들은 영희가 난쟁이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나는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정판에서 식자로 올라간 다음에는 일을 하다 말고 원고를 읽는 버릇까지 생겼다. 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판을 들고 가 몇 벌씩 교정쇄를 내기도 했다. 영호와 영희는 나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가져다준 교정쇄를 동생들은 열심히 읽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노력으로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그 해 늦가을 밤 아버지는 나를 작은 나무배에 태우고 방죽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말없이 노만 저었다.

 “돌아와요.”

 영희가 마당에서 소리쳤다.

 “그 배 위험해요.”

 그러나 아버지는 방죽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갔다. 손을 흔드는 영희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방죽의 물이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배 안으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는 언덕 위에 교회를 지을 때 나무널빤지를 훔쳐 왔다. 영호와 나는 한밤중에 깨어 널빤지를 훔쳐왔다. 영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널빤지를 훔쳐 왔다. 교회 건물은 말짱했다. 그런데 우리 배는 망가져 물이 스며들었다. 영희는 아버지를 걱정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알았다. 아버지는 방죽 한가운데서 노를 세웠다. 스며든 물이 우리의 발목을 넘어 찼다. 나는 신발을 벗어서 물을 퍼냈다. 아버지가 내 신발을 빼앗았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영수야.”

 아버지가 말했다.

 “어제 왔던 꼽추 아저씨 생각나니?”

 “언제요?” 

 “어제.” 

 나는 다른 신발을 벗어서 또 물을 퍼냈다. 아버지가 다시 내 손을 막았다.

 “전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모르는 척해도 쓸데없어. 난 다 안다.”

 “뭘 아신단 말씀예요?”

 어제가 아니라 이미 삼 년 반 전의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꼽추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다.

 “그 아저씨와 전에도 일을 했었어. 아주 큰 바퀴를 탔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일이 언제 있었어요?”

 “너는 장남이야. 장남인 네가 믿지 않으니까 두 동생도 믿질 않아.”

 “어머니도 모르시는 일야요.”

 “얘야.” 

 아버지가 말했다.

 “너만은 알고 있어야 한다. 너희 어머니는 병야. 어제 왔던 꼽추 아저씨가 또 올 거다. 나를 막지 마. 다른 일은 이제 힘이 들어 못하겠다. 너는 내가 언제까지나 수도 파이프를 갈아 잇고, 펌프 머리를 들어 달 수 있을 거라고 믿니? 높은 건물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일도 할 수가 없어. 이젠 안 돼.”

 “아버지는 일을 안 하셔도 돼요. 저희들이 일을 하잖아요.”

 “누가 너희더러 일하라고 했니? ”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들은 학교에만 나가면 돼.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다.”

 “알았어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이제 그 신발을 주세요.”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다가 신발을 내주었다. 나는 물을 퍼냈다.

 “어제 꼽추 아저씨는 나를 도와줄 생각으로 왔었어. 내일 또 올 거다. 너희들이 그 아저씨를 처음 본다는 건 말도 안 돼. 우리는 함께 일했었다. 생각나지 않니? 아예, 힘으로 나를 윽박지를 생각은 하지 마라.”

 “그 아저씨가 왔던 게 언제라구요?”

 “어제.”

 “그 노를 주세요.”

 아버지는 세워들고 있던 노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본 꼽추였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가 아니라 삼 년 반 전의 일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다. 물가에 닿기 전에 배는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를 안고 수초 사이를 헤쳐나갔다. 우리는 물에 젖어 온몸을 떨고 있는 아버지를 어머니에게 맡겼다. 아버지를 어머니 이상으로 간호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아버지는 병이세요.”

 내가 말했다.

 “닥쳐라!”

 어머니가 말했다.

 “언제나 알아듣겠니! 아버지는 지치셔서 그런 거야.”

 그 해 겨울을 아버지는 방안에서 났다. 나는 배를 끌어내 말뚝에다 메었다. 날이 추워지자 울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방죽이 얼었다. 

 밤에 명희 어머니가 또 왔다.

 “영희 엄마. ”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입주권이 자꾸 올라요. 아침에 십칠만 원 했던 게 십팔만오천 원으로 뛰었어요. 우리는 괜히 먼저 팔아 가지고 손해만 봤어요.”

 “저런!”

 “만오천 원이나!”

 어머니는 낮에 떼어놓았던 알루미늄 표찰을 종이로 쌌다. 그것을 철거 계고장과 함께 옷장 안에 넣었다.

 “영희야.”

 어머니가 불렀다.

 “아버지 어디 가셨니?”

 “모르겠어요.”

 “영호야.”

 “아까 아무 말씀 없이 나가셨어요.”

 “영희야, 큰오빠는 어디 있니?”

 “방에 있어요.”

 “아버지가 어딜 가셨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불안해졌다.

 “얘들아, 아버지를 찾아 봐라.”

 나는 아버지가 놓고 나간 책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 영희는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기타였다. 내가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기 위해 라디오를 사러 갈 때 영희가 따라왔었다. 쓸 만한 라디오가 있었다. 그런데, 영희가 먼지 속에 놓인 기타를 들어 퉁겨보는 것이었다. 영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쳤다. 긴 머리에 반쯤 가려진 옆얼굴이 아주 예뻤다. 영희가 치는 기타 소리는 영희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나는 먼저 골랐던 라디오를 살 수 없었다. 좀더 싼 것으로 바꾸면서 영희가 든 기타를 가리켰다. 그 라디오가 고장이 나고 기타는 줄이 하나 끊어졌다. 줄 끊어진 기타를 영희는 쳤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아버지는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젊은이에게서 빌렸다. 그의 이름은 지섭이었다. 지섭은 그 집 가정교사였다. 아버지와 그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은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나는 책장을 덮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방죽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 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2

 나는 방죽가 풀숲에 엎드려 있었다. 온몸이 이슬에 젖어 축축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잡초에 맺힌 이슬방울이 나의 몸에 떨어졌다. 한밤을 나는 방죽가 풀숲에 엎드려 세웠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어둠이 조금씩 뒷걸음쳐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밤을 우리의 집에서 보내지 못했다는 아픔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동네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들이 영희를 태워갔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얘들아!”

 어머니가 말했다.

 “이러고만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찾아 봐도 없는 걸 어떻게 해요?”

 내가 말했다. 나는 헐려버린 이발관집 공터에서 주정뱅이를 만났다.

 “찾아 봐야 쓸데없는 일이야.”

 “정말 보셨어요?”

 “암, 봤다니까.”

 주정뱅이는 말을 잘 못 했다. 그는 심하게 딸꾹질을 해댔다.

 “영희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너희 아버지는 알고 있어.”

 “아버지도 모르세요.”

 “그럴 리가 없다. 너희 아버지가 신호를 보내서 비행접시가 왔던 거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굉장히 큰 접시였지. 그 밑에서 나온 괴물들이 영희를 끌어올렸어, 순식간에.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그게 비행접시라는구나.”

 주정뱅이는 계속 딸꾹질을 해댔다.

 “그만두세요.”

 내가 말했다.

 “그럼 찾아 보렴.”

 주정뱅이가 말했다.

 “네 동생이 어디 있나 찾아봐. 있을 턱이 없지. 나는 목이 말라 잠을 깼었어. 그 시간에 잠을 깰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들은 영희를 태우고 순식간에 날아갔어. 머리가 몹시 크고 다리는 아주 가늘었다.”

 “안녕히 가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아직 안 간다.”

 주정뱅이가 말했다.

 “이것들을 마셔 버리고 가야지.”

 그는 구들돌 위에 쌓아놓은 여섯 짝의 창문과 두 짝의 대문을 가리켰다. 그는 전날 지붕에서 걷어 내린 기왓장과 펌프 머리, 그리고 장독 두 개를 팔아 모두 마셔 버렸다. 우리 동네 주민들의 삼분의 이 이상이 이미 집을 헐어버리고 떠났다. 나는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죽 위 하늘의 별빛이 흐려 보였다.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풀어지지도 않은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몇 번 껑충껑충 뛰었다. 대문을 열고 나온 형이 방죽 길을 따라 걸어왔다.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힘을 내, 형.”

 내가 말했었다.

 “이건 힘으로 할 일이 아니다.”

 형이 말했다.

 “그럼 뭐야? 용기가?”

 형은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기계실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했다. 

 “우리가 말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일종의 싸움이다.”

 형이 말했다. 형은 말을 근사하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봐.”

 “알아.”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 시간이 삼십 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공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 시간으로 삼십 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는 이십 분 동안은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 공원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 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자기와 공원들이 함께 누리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공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공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공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수많은 공원들은 갈 곳이 없었다. 작은 공장들이 채용할 인원은 한정이 되어 있다.  나는 돈도 못 벌고 놀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터를 찾는다고 해도 낯선 곳이다. 작은 공장이라 작업장은 더 나쁘고 돈도 오르지 않은 채 받는 액수보다 훨씬 적을 수가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공원들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들어와 중요한 성장기의 삼사 년을 이 공장에서 보냈다. 익힌 기술을 빼 놓으면 성장의 기반이랄 것이 없다. 우리 공원들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밖에는 사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땀으로 다진 기반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공원들은 일만 했다. 대다수 공원들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상태를 인정했다. 무엇 하나 일깨워 줄 사람도 없었다. 어른들도 자기들의 경험을 들려 줄 것이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옳은 것이 실제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지는 것만을 그들은 보았었다. 우리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다. 사장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 집 식구들은 정원 잔디를 기계로 밀어서 깎았다. 그 집 정원에서는 손질이 잘된 나무들이 밝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그 집 나무들은 ‘나무종합병원’에서 나온 나무 의사들이 돌보았다. 나도 나무병원 앞을 지나가 본 적이 있다. 간판에 ‘귀댁의 나무는 건강합니까?’라고 씌어 있었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병충해 진단․생리적 피해 진단․외과 수술․건강 유지 관리’라고 씌어 있었다. 함께 지나던 어린 조역이 말했다. “우리 집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모른다. 어린 조역은 그때 거의 날마다 코피를 흘렸다.

 형은 웃옷을 벗어 나의 등에 얹어주었다. 풀숲으로 들어간 형의 바짓가랑이도 이슬에 젖었다.

 “영희를 보았다는 사람은 주정뱅이 아저씨밖에 없었어.”

 변명하듯 내가 말했다.

 “비행접시가 내렸다는 곳이 여기야.”

 “그래 밤새도록 뭘 봤니?”

 “형은 내가 그 아저씨 말을 믿었던 것 같아?”

 “아니.”

 “찾아 나설 데가 있어야지.”

 “그만 들어가자.”

 “형은 영희가 왜 집을 나간 것 같아?”

 “너희들 때문이야.”

 어머니는 말했다.

 “너희들이 핑핑 놀고 있기 때문에 나갔어.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모든 게 너희들 책임이야. 다른 아이들은 멀쩡하게 남아서 일을 하는데 너희들은 왜 쫓겨났니?”

 “어딜 가면 꼭 말을 하고 나갔었잖아? 나는 영희가 집을 나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참을 수가 없었겠지.”

 형이 말했다.

 형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형은 언제나 나보다 생각이 깊었다. 아는 것도 많았다. 학교를 그만두자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난쟁이만 아니었다면 형은 학자가 될 사람이었다. 형은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다. 나는 형을 위해 기계에서 돌아나오는 인쇄물을 접어다 주고는 했다. 아주 어려운 것도 형은 참고 읽었다. 돈을 타면 헌책방에 가서 사다 읽기도 했다. 책은 형에게 무엇이든 주었다. 형은 고민하는 사나이의 표정을 종종 지어 보이고는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다. 형의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적혀 있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 십칠 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셀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 것도 첨가하지 못했고…… 나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 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일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형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공책을 읽는 동안 형은 고민하는 사나이의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의젓한, 고민하는 사나이의 얼굴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형은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비웃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영호야.”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형처럼 책을 읽어라.”

 “뭘 하겠다는 게 아냐.”

 형이 말했다.

 “나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보는 거야.”

 “이제 알겠어.”

 나중에 나는 말했다. 

 “형은 이상주의자야.”

 말을 하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나도 형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려운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나는 고민하는 이상주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대는 일그러졌다. 형은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때 형이 화를 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우리는 난쟁이의 아들이었다. 형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풀숲으로 나갔다. 나는 돌멩이를 집어 방죽을 향하여 던졌다. 소리 없이 물방울만 올랐다. 마당에서 나는 계속 돌멩이를 던졌다.

 “영호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 돌멩이질은 그만두고 동회 앞에나 나가 봐라.”

 “가 보나마나예요. 한 시간 전에 이십이만 원 했는데 또 올랐겠어요?”

 “그래도 가 봐. 이십오만 원이면 팔겠다고 그래.”

 나는 다시 돌멩이를 집어 방죽을 향해 던졌다. 동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승용차도 몇 대 서 있었다. 승용차도 몇 대 서 있었다. 그곳에는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었다. 입주권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었다. 팔려는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거간꾼의 눈치만 보았다. 한결같이 영양이 나쁜 얼굴들이었다. 거기서는 눈물 냄새가 났다. 나는 눈물 냄새를 가슴으로 맡았다. 누가 나의 팔을 끼었다. 영희였다. 영희는 햇볕에 발갛게 탄 얼굴을 옆으로 저어 보였다. 잠실까지 갔다 오는 길이었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 근처의 복덕방 시세도 이십이만 원이라고 했다. 이젠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작은오빠, 엄마더러 그만 팔자고 그래.”

 영희가 말했다.

 “갑자기 내려가면 어쩌려고 그러지?”

 “저에게 파세요.”

 웬 여자가 말했다.

 “소개업자가 아녜요. 직접 입주하려고 그래요. 명의 변경이 가능한 건가요?”

 “물론 가능한 거죠.”

 내가 말했다.

 “우린 표찰이 있어요.”

 “그 표찰이란 거 어떻게 생긴 거예요?”

 “작은 알루미늄판입니다.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져 있어요.”

 “무찰은 또 뭔가요? 무찰은 값이 싸던데.”

 “표찰이 없는 집을 무찰이라고 그래요. 몇 년 전 무허가 건물 일제 조사 때 시에서 잘못 조사해 빠뜨렸든가, 사유지 건물로 판단, 무허가 건물 등록 대장에서 빠진 겁니다.”

 여자는 땀을 흘리고 서 있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찍어내며 게시판을 가리켰다. 무허가 건물 명의 변경 신청 양식이 붙어 있었다. 그 밑에는 갖추어야 할 구비 서류가 적혀 있었다. “신청서 1통, 매도자 인감1통, 매매 계약서 사본 1통, 인우보증서 1통” 하고 여자가 읽었다.

 “매매 계약서 한 통만 쓰면 됩니다.”

 내가 말했다. 

 “철거 계고장이 나온 날짜보다 한두 달 앞서 산 거로 하면 돼요.”

 “그럼 정말 안전한가요? ”

 “아주머니 이름으로 바꾸어진다니까요. 아파트에 아주머니 이름으로 입주하게 돼요.”

 “그건 불법 아녜요?”

 여자는 빳빳한 자세로 서서 땀을 찍어 냈다.

 “동회에 들어가서 건설계 직원에게 물어 보세요.”

 “이십이만 원은 비싸요. 만원만 깎아 줄래요?”

 “아주머니.”

 내가 말했다.

 “헐릴 저희 집 같은 걸 새로 지으려면 백삼십만 원은 있어야 됩니다. 저희 아버지가 평생을 일해 지은 집예요. 우린 그걸 이십이만 원과 바꾸어야 될 입장예요. 거기서 전세 주었던 돈 십오만 원을 제하고 나면 칠만 원이 남습니다.”

 “어쨌든 이십일만 원에는 안 되겠다는 얘기 아녜요?”

 나는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돌아섰다. 영희가 작은 주먹으로 나의 등을 쳤다. 잠시 후에 또 한 번 쳤다. 영희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영희에게는 청바지도 잘 어울렸다. 나는 영희의 얼굴을 보지 않고 돌아서 걸었다.

 “팔지 말고 기다려요.”

 승용차 안에서 한 사나이가 말했다.

 “내가 사겠소.”

 “얼마예요?”

 “얼마면 팔겠어요?”

 “이십오만 원.”

 “좋아요. 내가 저녁에 가죠. 이웃에 팔 사람이 또 있으면 싸게 팔지 말고 기다리라고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아버지가 말했었다.

 “진실을 말하고 묻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들이 그 꼴이 되었구나.”

 우리는 개천 위에 놓은 시멘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난간 사이에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리 저쪽 끝에서는 곯아 떨어진 주정뱅이가 코를 골았다. 아버지의 주량은 그의 반도 안 되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주정뱅이 주량의 반을 마셨다. 밤이 늦어 동네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자리에 들었다. 두 집만 깨어 있었다. 주정뱅이네 집과 우리 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갈 것 같았다. 형도 아버지가 든 술병을 빼앗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을 생각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언덕 위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고통․구원을 말했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나는 내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도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만도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그들 시대의 성격을 가졌다. 나의 몸은 아버지보다도 작게 느껴졌다. 나는 작은 어릿광대로 눈을 감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할 일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았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회의실 창가에 서서 우리를 내다보았다. 그들이 우리의 일을 빼앗았다.

 “그러니까, 다시 얘길 해 보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희 둘만 남았었다 이거지? 처음엔 함께 일손을 놓고 사장을 만나 담판하기로 했던 아이들이 너희들은 배반해 너희 둘만 남았었다 이거냐?”

 “술은 그만 드세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잘했어.”

 아버지는 다시 병을 기울여 술을 마셨다.

 “너희도 잘했고, 그 아이들도 잘했다.”

 “저희들 먼저 들어갈래요.”

 “그래, 들어가라. 들어가서 너희 엄마를 내보내.”

 “그럴 필요 없어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주정뱅이의 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잘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둘이서 아버지도 제대로 못 모시는구나.”

 “가만 있어.”

 아버지는 빈 술병을 다리 밑으로 던졌다. 

 “얘들이 오늘 훌륭한 일을 했어. 사장을 만나 얘기를 했대. 회사가 잘 되려면 몇 사람의 목이 필요하다고 말야. 그리고 사장에게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공원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한 거야. 이 말뜻을 엄마가 알까? 응?”

 “아버지, 그게 아녜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어요. 얘기가 먼저 새버려 그냥 쫓겨났을 뿐예요.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을 만났으면 그런 말을 했을 거 아냐? 그렇지? 대답해 봐.”

 “네.”

 작은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들었지? 엄마 들었어?”

 “걱정할 거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얘들은 일류 기술자예요. 어느 공장에 가든 돈을 벌 수 있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모르는 소리는 왜 모르는 소리예요? 공장도 옮겨 보는 게 좋아요.”

 “그게 안 된다니까. 벌써 공장끼리 연락이 돼 있어. 똑같은 공장들이야. 얘들을 받아 줄 공장이 없어. 얘들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이 알아야 돼.”

 “그만두세요. 얘들이 무슨 반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야단예요.”

 “뭐라구?”

 “가자.”

 형은 시멘트 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건넜다. 그 끝에서 곯아떨어진 주정뱅이를 일으켜 업었다. 다리를 휘청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형은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잠도 잘 못 잤다. 혓바늘이 돋고 입맛을 잃었다. 밤에도 머리가 맑아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형은 주정뱅이네 마루에다 주정뱅이를 내려놓았다. 어린 딸이 눈을 비비며 나와 아버지를 받아 눕혔다. 우리는 골목을 나와 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형은 돌아서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공원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좁은 마당에 나와 공을 찼다. 그들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십 분이 지나자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게 뭐람!”

 혼잣말처럼 형이 중얼거렸다.

 “저녁에 다른 이야길 하면 안 됩니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말했다.

 “이십오만 원이면 아무 말 안 해요.”

 내가 말했다. 그 날 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우리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 버렸다. 그는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가는 것을 이십오만 원씩 주고 모두 사 버렸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팬지꽃 앞에 앉아 기타를 쳤다. 영희는 팬지꽃 두 송이를 따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기타만 쳤다. 사나이가 아버지에게 담배를 권했다.

 “이십오만 원이 분명하죠?”

 어머니가 물었다. 사나이를 따라온 나이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열어 돈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마루에 앉아 매매 계약서를 썼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서류가 둔 봉투와 도장을 가지고 나왔다. 아버지는 계약서 매도자란에 ‘金不伊’라고 쓰고 도장을 눌렀다. 나이 든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버지 이름이 갖는 아픈 바람의 뜻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어머니는 소중하게 싸 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넘겨주었다. 식칼 자국이 난 표찰, 아침 수저를 놓고 가슴을 세 번 치게 한 철거 계고장, 집을 헐값에 버리기 위해 생전 처음 내 본 인감 증명 두 통, 미리 서명해 두었던 명의 변경 신청서, 힘 하나 없는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가 차례대로 적혀 있는 주민등록 등본 두 통, 마당가 팬지꽃 앞에 앉아 있던 영희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그것을 받았다. 꼭 삼 초 동안 들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넘겨 주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다음날 아침, 명희 어머니는 사람들을 시켜서 집을 헐었다. 어머니가 십오만 원을 갚았다. 두 부인은 손을 마주잡은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용달차가 좁은 골목을 뚫고 들어와 명희네 짐을 실었다. 명희 어머니가 치마를 올려 눈물을 닦았다.

 “에유, 정이란 게 뭔지!”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정이란 게 이렇게 더러운 게라우.”

 그 말이 우리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용달차가 집 앞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오른손을 반쯤 올렸다가 내렸다. 왼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지섭의 책에 아버지의 손때가 까맣게 묻었다. 아버지와 지섭은 우리에게 대기권 밖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 같은 것도 필요가 없지.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하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넌 이때까지 뭘 배웠니?”

 아버지가 말했다.

 “뉴턴이 그 중요한 법칙을 발표하고 삼 세기가 지났어. 너도 그걸 배웠지? 국민학교 때부터 배웠어. 그런데 우주에 관한 기본 법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그런데 누가 아버지를 달에 모시고 가겠대요?”

 “지섭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다. 그 곳 관리인 로스씨가 답장을 보내올 거야.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다.”

 “그 책을 돌려 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 말을 믿지 마세요. 그는 미쳤어요.”

 “이 책의 사진을 봐라. 이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이고, 이 사람은 로버트 고다드다. 당시 사람들이 미치광이로 지목했던 인물들이야. 이 미친 사람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아니?”

 “몰라요.”

 “넌 학교에서 죽은 교육을 받았어.”

 “어쨌든 그 책을 돌려주세요.”

 “너희들은 내가 이 땅에서 끝까지 고생하다 바짝 마른 몰골로 죽기를 바라고 있지? 힘든 일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니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너희들은 왜 지섭에게 아무 것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니?”

 “도대체 뭘 배우라는 말씀예요?”

 “로스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 올려 보여 주마.”

 “없지?”

 “네.”

 “찾지도 못하면서 밤새도록 어디 가 있었니?”

 나는 돌멩이를 집어 다시 방죽을 향해 던졌다. 어머니도 기진해 다른 말을 못 했다. 형이 어머니의 등을 밀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백여 채의 집이 헐리고 남은 것은 몇 채 안 되었다. 우리도 영희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전날 떠났을 것이다. 철거일을 어겨야 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행복동 생활의 마지막 며칠은 우리에게 악몽과 같았다. 우리는 영희를 찾아 헤매었다. 영희를 본 사람은 없었다. 영희는 가방도 들지 않고 집을 나갔다. 갖고 나간 것은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꽃 두 송이 뿐이었다. 나는 좀 큰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이번에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잔물결이 수초 사이로 밀려왔다. 지섭이 이발관집 공터를 지나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쇠고기가 들려 있었다. 대문 앞까지 나온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쇠고기를 부엌 안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부엌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형이 안쪽 아궁이 앞에 엎드려 불을 피우고 있었다. 형은 눈물을 씻으면서 일어나 아궁이에 나무를 넣었다. 어머니는 밖으로 나와 눈물을 씻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명희네 집에서 나온 나무를 쪼개 아궁이에 넣고 나왔다. 형의 몸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밭은기침을 했다. 아버지와 지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빌려준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그가 감옥살이를 했다고 말했었다. 아버지에 의하면 그는 잘못한 것도 없이 감옥에 갔었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다. 형과 나는 시멘트담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집들이 다 헐려 곧바로 동사무소가 보였다. 그 너머로 밝고 깨끗한 주택가가 보였다. 그 바른쪽은 슈퍼마켓이 있는 큰길이다. 영희가 한때 일한 빵집이 보였다. 형과 내가 유리창 밖에서 본 영희는 정말 예뻤다. 아무도 영희가 난장이의 딸이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영희를 찾지 못했다.

 부엌에서 고깃국 끓는 냄새가 났다. 고기 굽는 냄새도 났다. 어머니가 상을 내려 행주질을 했다. 동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헐어버린 집들 공터를 가로질러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내가 대문을 잠갔다. 어머니가 밥상을 차렸다. 형이 상을 들어다 마루에 놓았다. 형은 나를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들이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친다고 해도 나는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었다. 그 옆자리에서 지섭이 수저를 들었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안아 국을 마셨다. 형과 나는 밥을 국에 말았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영희가 이 시간에 어디서 어떤 식탁을 대하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밥상에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앉았다. 그것을 잡아 칼날로 눌렀다면 피와 눈물, 그리고 힘없는 웃음 소리와 밭은 기침소리가 그 마디마디에서 흘러 떨어졌을 것이다. 대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이 집을 싸고돌았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담을 쳐부수었다. 먼지 구멍이 뚫리더니 담은 내려앉았다. 먼지가 올랐다. 어머니가 우리들 쪽으로 돌아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구운 쇠고기를 형과 나의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그들은 뿌연 시멘트 먼지 저쪽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숭늉을 떠왔다. 아버지와 지섭이 숭늉을 마셨다. 숭늉을 다 마시자 어머니는 밥상을 들었다. 내가 먼저 내려가 잠갔던 대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형이 이불과 옷가지를 싼 보따리 메고 뒤따라 나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은 무너진 담 저쪽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싸놓은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끌어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조리․식칼․도마 들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메고 나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 북쪽 벽을 치자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내려앉을 때 먼지가 올랐다.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이 나머지 벽에 달라붙었다. 아주 쉽게 끝났다. 그들은 쇠망치를 놓고 땀을 씻었다. 사나이가 종이에 무언가를 써 넣었다. 지섭이 들고 있던 책을 아버지에게 주었다. 그는 사나이를 향해 걸어갔다.

 “방금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지섭이 물었다. 사나이는 몇 초 후에야 지섭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말했다.

 “삼십 일까지 철거를 하게 돼 있었죠? 시한이 지났어요.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철거 작업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사나이가 돌아서려고 했다.

 지섭이 재빨리 말했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그 오백 년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사나이가 물었다.

 “모르시겠어요?”

 지섭이 되물었다.

 “그만 비켜요.”

 “당신이 덫을 놓았습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 상부에서. 백여 세대 이상이 여기다 생활 터전을 잡는 것을 몰랐어요? 덫을 놓은 게 아닙니까? 가서 말해요, 내가 치더라구.”

 설마 하고 서 있던 사나이는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지섭의 주먹이 사나이의 안면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사나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상체를 수그렸다. 두 손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우리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뒤늦게 몰려와 지섭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치고, 받고, 밟았다. 형과 내가 나설 차례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놔 둬라.”

 아버지가 말했다.

 “아는 사람이 말하게 해라.”

 형과 나는 아버지에게 팔을 잡힌 채 보았다. 일은 간단히 끝났다. 사나이는 일어나고 지섭은 땅에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지섭을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가 갑자기 몸을 떨면서 울었다. 지섭의 얼굴은 피에 젖었다. 피는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렸다. 그들이 지섭을 끌고 갔다. 그들은 올 때처럼 곧바로 공터를 가로질러 갔다. 동사무소를 지나 큰길 쪽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서더니 들고 있던 책을 형에게 주었다. 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의 작은 그림자가 아버지를 따라갔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는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3

 거실에 걸려 있는 부엉이가 네 번을 울었다. 이렇게 긴 밤을 세워 보기는 처음이다. 한 밤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나의 열일곱 해는 얼마나 긴 것인가. 그러나 큰오빠가 셈해 본, 우리 선조 대대로의 세월에 비하면 열일곱 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선조 대대로의 세월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에서는 머리카락좌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지섭의 책에 의하면 머리카락좌의 성운은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 오십억 광년에 나의 열입곱해를 대보일 수는 없다. 천년이라고 해야 모래 몇 알이 될지 모른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나는 영원을 어떻게 느낄 수 없다. 영원이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다면 나는 죽음을 통해 그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이다. 어둘 녘에 모래 섞인 바람이 분다. 선 하나로 표시될 그 지평 끝에 내가 알몸으로 서 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머리도 반쯤 숙여 나의 머리카락이 나의 가슴을 덮었다. 눈을 감고 열을 세면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바람 부는 회색의 지평선만 남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이 영원과 무관할 리가 없다. 우리의 생활은 회색이다. 집을 나온 다음에야 나는 밖에서 우리의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회색에 감싸인 집과 식구들은 축소된 모습을 나에게 드러냈다. 식구들은 이마를 맞댄 채 식사하고,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했다. 작은 목소리라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실제 모습보다도 작게 축소된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까지 회색이다. 나는 나 자신의 독립을 꿈꾸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집을 나온다고 내가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밖에서 나는 우리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끔찍했다. 두 오빠와 마찬가지로 나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직전에 읽은 부독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물, 물, 어디를 보나 물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배를 잃은 늙은 수부가 바다에 떠 있었다. 물 가운데서 그는 목말라 했다. 밖에서 회색에 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늙은 수부를 생각했다. 그와 똑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가 흔들렸으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만약을 위해 한 번 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수건을 대어 흔들었다. 그 수건으로 그의 입과 코를 가볍게 누르고 속으로 열을 세었다. 처음 일이 떠올랐다. 그는 나이든 사람이 매매 계약서를 쓰는 동안 내 옆에 서 있었다. 철거 계고장이 나온 날 내가 동사무소 앞으로 달려갔을 때부터 그는 나를 보았다. 어머니가 소중하게 싸 두었던 것들을 내놓을 때 그는 내 옆을 떠났다. 돌아서면서 그는 바른손을 내려 나의 가슴 쪽을 살짝 건드렸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들고 있었다. 내가 나오는 것을 아무도 못 보았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나는 방죽가 골목길을 빠져 동사무소 앞으로 갔다. 낮에 그렇게 붐비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승용차는 게시판 옆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승용차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그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내려왔다. 나를 보자 우뚝 섰다. 나이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넘겨주었다. 그는 그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나를 향해 걸어 왔다. 

 “나를 기다렸나?”

 그가 물었다.

 “왜?”

 “우리 거도 그 안에 있어요?”

 내가 검은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안에 있겠지.”

 “그걸 따라 왔어요.”

 “어떻게 하려구?”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 테야? 난 가야 하는데.”

 “그건 우리 집예요.”

 겨우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아니지.”

 그가 말했다.

 “내가 돈을 주고 샀어.”

 그는 열쇠를 꺼내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검은 가방을 넣고 그는 차에 올라탔다. 내가 손바닥으로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가 반대쪽 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탈 때에서야 기타를 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기타를 받아서 뒷자리에 놓아주었다. 그는 동사무소 앞에서 차를 돌려 나갔다. 나는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몸을 숨겼다.

 “바로 앉아.”

 그가 말했다. 차는 행복동을 떠나 낙원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차가 빨간 신호를 받자 나의 머리에서 팬지꽃을 가져다 냄새를 맡았다. 그는 작은 꽃송이를 왼쪽 윗주머니에 꽂았다.

 “우리 집은 영동이야.”

 그가 말했다.

 “조금 가다 내려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

 “싫어요.”

 내가 말했다.

 “돌아갈 집이 없어졌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 가방을 강탈해 갈 셈야?”

 “생각 중예요.”

 “좋아.”

 그가 말했다.

 “네가 할 일을 주지. 말을 잘 들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내쫓을 테야. 사실은 전부터 너를 봤어, 예뻐서.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든 ‘안 돼요.’ 하는 말을 내 앞에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 그러면 나는 너에게 내가 고용한 어떤 사람보다 많은 돈을 줄 용의가 있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나로서는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큰오빠는 우리의 집을 짓는 데 천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뜻을 잘 몰랐었다. 큰오빠의 말에는 물론 과장도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되자 여자가 가져야 할 가족과 가정에 대한 그 전통적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은연중 가르치려고 했다. 순결도 입이 닳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내가 어둠 속에서 남자를 생각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내가 집을 나와 한 생활을 알았다면 어머니는 목을 맸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친절하게 해 주었다. 제일 먼저 옷을 맞추어 주었다. 한꺼번에 여러 벌을 맞추어주었다. 나는 그를 위해 나를 치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아파트는 영동에 있었다. 사무실도 영동에 있었다. 나는 그의 사무실에서 주택에 관한 신문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에 옮겨 붙였다. 날마다 같은 일만 했다. 주택에 관한 기사가 없을 때는 일반 기사를 읽으며 소일했다. 그의 광고도 신문에 날마다 났다.  ‘잠실은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잠실 아파트에 대해 상담하실 분은 지금 곧 전화를 하세요. 은아는 당신의 성실한 부동산 안내자입니다. -은아부동산.’ 주택 분양 광고도 났다. ‘신천호대교, 잠실지구, 강남 1로에 붙은 급속도 발전 지역. 꿈이 깃들인 주택을 염가 분양 중이오니 이 기회를 이용하십시오. -은아주택.’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스물아홉에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은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그는 재개발 지구의 표를 거의 몰아 사들이다시피 했다. 영동 일대에 잡아 놓은 땅도 많았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작은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에게도 말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밤에 아파트로 돌아오면 집으로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전화선 저쪽 끝에 그의 아버지가 않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일을 보고하고 자문도 구했다. 그는 거의 차렷 자세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끝나면 그의 고용인들이 정리한 대장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을 사십오만 원에 팔았다. 그 이하로는 팔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미리 사두었다가 일이만 원 정도 더 받고 넘기겠지 했었다. 그가 거실에 앉아 일을 하는 동안 가정부는 음식을 차려 놓고 그가 식탁 앞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는 어머니가 보내 준 가정부였다. 그는 그 가정부에게 별도의 돈을 주었다. 집식구들에게 나에 관한 이를 보고하면 안 된다는 조처였다. 가정부는 내가 온 다음부터 잠을 나가서 잤다. 나는 처음 약속대로  ‘안 돼요.’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안 돼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나난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나는 밤마다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오빠들은 다른 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나갔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잠이 든 듯 만 듯한 상태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했다.

 “영희야, 넌 집을 나가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의 금고 속에 우리 아파트 입주권이 들어 있어요. 그걸 맨 밑으로 내려 놨어요. 아직 팔리지 않았어요. 팔리기 전에 그걸 꺼내 가지고 갈래요. 그의 금고 번호를 알아 놨어요.”

 “누가 너더러 그런 짓을 하라고 했니? 빨라 일어나 옷을 입어라.”

 “안 돼요, 엄마.”

 “우린 성남으로 가기로 했다. 빨리 일어나라.”

 “안 돼요.”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 한 분이 알몸 시체로 수리조합 봇물에 막혀 있었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 했기 때문야. 주인 여자가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을 사매질해 숨지게 했단다.”

 “엄마, 전 달라요.”

 “같아.”

 “달라요.”

 “같아.”

 “달라요!”

 “넌 이제 그것 때문에 망한다. 어린 게 그것을 좋아해.”

 “그래요. 전 좋아해요.”

 “망할 것!”

 몸부림치다 눈을 떠보면 밤중이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몰랐다. 나의 몸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좋아했다. 그는 어린 나를 좋아했다. 그는 완전하게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도덕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것을 꺼냈다. 그의 금고 속에는 돈과 권총과 칼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돈과 칼도 꺼냈다. 나는 달 천문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는 이미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는 머리카락좌 성운을 보았는지 모른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영원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한밤이 나에게 너무나 길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수건을 떼고 약병의 뚜껑을 닫았다. 나에게 더없이 고마운 약이었다. 첫날 그 약이 괴로워하는 나의 몸을 마취시켜 잠 속으로 몰아 넣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처음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손가방을 열어 그 안의 것들을 확인했다. 모두 가지런히 넣어져 있었다. 나는 손가방을 열어 그 안의 것들을 확인했다. 모두 가지런히 넣어져 있었다. 나는 옷을 입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가야 할 것은 이제 없었다. 집을 나올 때 입었던 옷, 뒷굽이 닳은 신발, 큰오빠가 사준 줄 끊어진 기타는 이미 그 집에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 반대로 밀었다. 문은 닫히면서 스스로 잠겼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기다려 탔다. 택시는 불을 켜고 빈 영동 거리를 달렸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제3한강교를 건널 때 나는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한 공기가 몽롱한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난간을 짚고 이제 희뿌연 빛을 반사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운전 기사가 따라나와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나를 보았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누워 난 한겨울 동안 어머니는 취로장에 나가 일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설 때마다 맞았던 그 새벽을 빛깔을 이제 알았다. 자갈 채취선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내가 탄 택시는 남산 터널을 빠져 시내를 가로질러 달렸다. 죄인들은 아직 잠자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구할 자비는 없었다. 나는 낙원구에서 내렸다. 나는 낙원구의 거리와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다방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아버지의 도장이 찍힌 매매 증서를 꺼내 찢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일대는 채마밭이었다. 나는 차를 마시고 채마밭 위에 깔아놓은 포장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제 더 이상 헤맬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장 행복동 동사무소를 향해 갔다. 동사무소는 아침부터 붐볐다. 내가 줄 뒤에 가서 서는 것을 건설계원이 힐끗 보았다. 그는 일을 하다 말고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난장이 딸 아냐?”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나는 똑바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도장 찍는 소리, 표찰 떨어지는 소리,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리 집 표찰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가 남긴 식칼 자국이 손끝에 느껴졌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어쩐 일이지?”

 건설계원이 물었다.

 “집이 이사간 건 알아?”

 “네.”

 나는 말했다.

 “철거 확인증이 필요해서 왔어요.”

 “철거 확인증은 왜?”

 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주권을 팔았잖아? 팔아버리고 무슨 필요로 그러는 거야?”

 “그 세단차 사나이가 사 갔지.”

 옆 사나이가 말했다. 나는 몇 초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아저씨는 어느 편예요?”

 내가 말했다.

 “아파트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저희예요.”

 “딴은 그래.”

 계원이 옆 사나이를 보았다. 그들은 어깨만 들었다 놓았다.

 “서류를 갖고 있어?”

 “서류는 무슨 서류야? 당사자 입주인데. 계고장과 표찰만 있으면 돼. 그걸 갖고 있다면 우리가 할 말은 없어.”

 “여기 있어요.”

 나는 표찰과 철거 계고장을 내주었다.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 대장과 비교해 보았다. 옆 사나이가 표찰을 큰 통에 던져 넣었다. 그 안에 많은 표찰이 들어 있었다. 우리 표찰이 가벼운 생철 소리를 내며 그것들 위에 떨어졌다. 건설계원이 용지를 내주었다. 나는 거기에 써 넣었다. 

 아버지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무허가 건물 발생 년도를 써 넣으며 나는 손을 떨었다.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몸이 약해져서 그래, 나는 생각했다. 큰오빠의 말대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잠시 멈추었다가 썼다. 철거 확인원을 건설계원 앞으로 밀어 놓았다.


번호

458

 기존 무허가 건물 철거 확인원  

처리 기간

즉   시

신청인

성 명  

김불이

주민등록번호

123456-123456

생년월일

1929년 3월 11일

주 소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93

본 적

 경기도 낙원군 행복면 행복리 276번지


철거된 

건물 위치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93

  구분

         가옥주 ( ○ )           세입자 (    )

철거 일시

 197x년 월 일  

 무허가건물 발생년도

 196x년 5월 8일

용      도

 아파트 입주 신청용

  위 사실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7x년 10월 7일

                                             신청인   김  불  이

                    위 사실을 확인함

         197x년 10월 7일

                                          낙원구  행복 제1동장


 “철거 일시를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계원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 있었어?”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197×년 10월 1일이라고 써 넣었다.

 “이사간 곳도 모르지?”

 “네.”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어?”

 나는 다리의 힘까지 빠지는 것을 느끼며 책상 모서리를 짚고 섰다. 옆 사나이가 건설계원을 쿡 찔렀다. 계원을 ‘위 사실을 확인함’ 옆에 작은 도장을 찍고 그것을 안쪽 사무장에게 넘겼다. 나는 줄 밖으로 나서며 이마를 짚었다. 가벼운 미열이 전신에 일었다. 안쪽에서 사무장이 일어서며 나를 손짓해 불렀다. 그는 ‘행복 제1동장’ 위에 직인을 찍었다. 그것을 내주기 전에 나를 창가로 데리고 갔다. 사무장은 큰길 건너 포도밭 아랫동네를 가리켰다.

 “위에서 세 번째 집야.”

 그가 말했다.

 “그 댁 아주머니를 찾아가. 윤신애 아주머니. 전부터 아버지를 잘 아시는 분야.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까지 오셨었어. 너를 찾느라구.”

 “저도 전에 뵌 적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구청에 들렀다 주택공사로 가야 돼요. 일을 끝내고 갈게요.”

 “그 아주머니가 다 말씀해 주실 거다.”

 사무장이 말했다.

 “친절하신 아주머니야.”

 “고맙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사무장과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나에게 말하고 싶어했다. 잠시도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슈퍼마켓 앞을 지날 때 빵집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내가 했던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고개를 돌렸다면 우리 동네를 한눈에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참았다. 차마 고개를 돌려 볼 수 없었다. 구청 일은 좀 쉽게 끝났다. 나는 주택과로 가서 철거 확인증을 내주고 입주 신청을 했다. 구청 층계를 내려오면서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몇 년을 밖에서 산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집을 나온 다음 편한 잠을 이루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모태에서뿐만 아니라 출생 후에도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집을 나온 다음 그와 대한 식탁은 늘 풍성했다. 그 영양은 축적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받는 정신적 압박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 그가 거기서 취한 열량을 다시 빼앗아갔다. 마지막 밤을 꼬박 세운 것도 영향을 주었다. 아무 데나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가야지. 그 아주머니가 나를 식구들 옆으로 보내 줄 것이다. 

  나는 새벽에 왔던 길을 되밟아갔다. 남산 터널을 빠져 제3한강교를 건넜다. 벌판에 서 있는 그의 아파트가 보였다. 나는 가방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그의 칼을 만져 보았다. 상아로 만든 칼자루 윗부분에 작은 구슬만한 쇠가 붙어 있었다. 그것을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택공사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공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서둘러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밀려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건물이 햇빛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잔칫날 같았다. 몇 군데 차일까지 쳐져 있었다. 나는 신청 용지를 타는 곳에 가 섰다. 차례가 되자 직원이 시 접수증을 보자고 했다. 그 직원이 신청 용지를 내주었다. 나는 줄 밖으로 나서며 아파트 임대 신청서의 내용을 쭉 읽었다. 그 임대 조건 중에 ‘신청자와 입주자는 동일인이어야 하며 제삼자에게 전대하거나 임차권을 채권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음‘ 이라는 것도 있었다. 죽어버린 조문이었다. 그 조문이 든 신청서에 아버지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었다. 다시 손이 떨렸다. 다리의 힘도 빠져 주저앉을 것 같았다. 신청서를 써 가지고 다음 줄에 가 섰다. 내가 선 줄에 재개발 지구의 주민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앞줄 책상의 직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있었다.

 “산 거죠?”

 알면서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음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산 거죠?”

 그 직원이 나에게도 물었다.

 “네, 샀어요!”

 아프지만 않았다면 나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불친절하고 기분 나쁜 사나이였다. 나는 아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직원은 신청 용지․시 접수증․주민등록등본을 철박이로 눌렀다. 그 위에 접수 도장을 쿡 찍었다. 그것을 받아 돌아서다 말고 나는 몸을 숨겼다. 줄 반대쪽으로 들어가 건물 바로 앞쪽을 살폈다. 바로 그가 그의 승용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서 있었다. 나는 아픈 몸을 숨기고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와 마주친다면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한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서도 그는 아는 것이 없다. 절망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다. 빈 식기들이 맞부딪치는 소리, 손과 발, 무릎, 그리고 이가 추위에 견디지 못해 맞부딪치는 소리를 그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할 때마다 알몸으로 그를 받아들이며 삼킨 나의 신음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벌겋게 달군 쇠로 인간에게 낙인을 찍는 사람들 편이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칼을 만져보았다. 그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건물 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그가 사나이를 맞아 악수하고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승용차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면서 주택공사 마당에서 나갔다. 눈물이 또 나의 눈에 내배었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업무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도 줄을 섰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차례를 기다렸다.

 “어디 아파요?”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직원이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말하며 들고 있던 것들을 넘겨주었다. 직원은 나의 서류를 확인해 받고 영수증 용지에 신청 번호를 적어주며 경리과에 가서 돈을 내라고 했다. 한 아주머니가 물을 받아다주었다. 나는 물을 마셨다. 경리과 사람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돈 액수를 확인한 다음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 내주었다.

 “이제 됐어!”

 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그들은 알았을까?

 나는 주택공사 건물을 등지고 나왔다. 거리에 쓰러지지 않고 신애 아주머니네 집까지 갔다. 아주머니네 집 초인종을 누르고 우리 동네를 보았다. 우리 집이, 이웃집들이, 온 동네의 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방죽도 없어지고, 벽돌 공장의 굴뚝도 없어지고, 언덕길도 없어졌다. 난장이와 난장이의 부인, 난장이의 두 아들, 그리고 난장이의 딸이 살아간 흔적은 거기에 없었다. 넓은 공터만 있었다. 신애 아주머니가 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나와 나의 몸을 부축해 안았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신애 아주머니는 전에도 다친 아버지를 이렇게 부축해 안아다 눕혔다. 딸이 물수건을 해오고, 아주머니는 나의 옷을 풀어헤쳤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처럼 나에게 해주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손과 발을 닦아 주고, 푹신한 이불을 내려 덮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내가 말했다.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자,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주머니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마. 오늘은 아무 얘기도 하지 말자.”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잠을 못 잤을 뿐예요. 잠이 와서 그래요.”

 “그럼 잠을 자라. 한잠 푹 자.”

 “빼앗겼던 걸 찾아왔어요.”

 “잘했다!”

 “수속까지 끝냈어요.”

 “잘했어.”

 “이사간 델 아시죠?”

 “암, 알잖구.”

 “사무장님을 만났어요.”

 잠이 들 듯 말 듯한 상태에서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가 다 말씀해 주실 거라고 했어요.”

 “다른 말은 없었지?”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한잠 자라. 자구 나서 우리 얘기하자.”

 “말씀을 듣기 전엔 못 잘 것 같아요.”

 내가 다시 눈을 떴다. 아주머니의 딸이 마루로 나갔다. 이내 대문 소리가 들렸다. 병원으로 의사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가 집을 나가구 식구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이 방 창문에서도 보이지. 어머니가 헐린 집터에 서 계셨었다. 너는 둘째치구 이번엔 아버지가 어딜 가셨는지 모르게 됐었단다. 성남으로 가야하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어. 길게 얘길 해 뭘 하겠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벽돌 공장 굴뚝을 허는 날 알았단다. 굴뚝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거반 사람들이 발견했어.”

 그런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다친 벌레처럼 모로 누워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가슴을 쳤다. 헐린 집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았다. 어머니가 다친 아버지를 업고 골목을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오빠들이 뛰어나왔다. 우리들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 놓았다.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끝.




(2)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5시가 이미 넘었는데도 어두웠다. 여느 때면 내방 창에 첫빛이 와 닿고 커어튼이 그 빛을 올 사이사이로 빨아들여 방안의 어둠을 밀어 버릴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의 수화기를 들고 주방으로 이어진 단추를 눌렀다. 아직 잠이 덜 깬 듯싶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림판을 흔들어 왔다. 커피를 시키고 일어나 커어튼을 젖혔다. 창문을 덮었던 안개가 스멀스멀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늙은 개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나는 내려다보았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개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느릿느릿 안개를 헤쳐 흐트려뜨렸다. 숙부가 독일의 어느 기업인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개였다.

 숙부는 자기가 받은 선물을 다시 할아버지께 바치면서 족보를 밝혔는데, 개의 계보가 그 나라의 호엔쫄레른 왕가까지 들먹이게 했다. 

 늙은 개의 가까운 선조들은 2차 대전에 참가해 노르만디 해안을 순찰하고, 아프리카의 사막도 횡단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흥분시켰었다.

 지도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늙은 개의 선조들은 주인과 함께 참전해 그들에게 할당된 참호를 지키고 보초를 섰다. 

 전진의 명령은 지도자가 내렸다. 

 “나는 언제나 옳다. 나를 믿고, 복종하고, 싸우라.”

 고 지도자는 말했다. 강력한 교육을 받은 유럽 국민답게 그들은 총력을 기울여 싸웠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개는 연못가에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찾아 내려앉는 참새를 앞발로 쳐 잡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영리하고 민첩한 사냥개를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냥을 나갈 때마다 피묻은 짐승들을 차에 싣고 왔다. 할아버지는 그 짐승들을 거실로 끌어들이게 해 카페트를 버려 놓으며 큰 소리로 웃고는 했다. 그 때 할아버지 앞으로 할아버지가 쏠 짐승을 꼼짝없이 몰아붙였던 개는 저의 집으로 들어가 적당한 양의 갈비를 뜯었다.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늙은 개는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두꺼운 책을 뽑아 그 개를 향해 내리던졌다. 빗나간 책이 풀장으로 이어진 보도 타일 위에 떨어졌고 늙은 개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숙부가 그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개는 이미 장년기를 지나 늙기 시작한 때였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할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숙부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숙부가 은강공장에서 올라온 공원의 칼을 맞고 숨졌을 때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숙모와 사촌들 옆에 선 아버지가 눈가에 차서 넘칠 듯 글썽해진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던 것이다. 

 나는 숙부를 죽인 공원을 법정 방청석에 앉아 보았다. 늙은 개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안개를 헤치며 온 아버지의 경호원이 내가 늙은 개를 죽일 마음으로 던진 두꺼운 책을 집어들었다.

 여자아이가 책과 커피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작은댁 사모님께서 아드님하고 오셨어요.”

 여자아이가 아직도 잠이 덜 깬 듯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엷은 하늘색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둘렀다. 

 “함께 온 사람이 있지?”

 내가 물었다. 

 “변호사를 데리고 오셨어요.”

 나는 웃옷을 벗고 잤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나를 바로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열다섯 살 계집아이로 왔는데 이태만에 몰라보게 자란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가슴 부분이 유난히 볼록해 보였다. 나가려는 아이를 잡아 세웠다. 나는 

 “너희 방 텔레비전에는 이런 것이 없지.”

라고 말하면서 카세트 테잎을 골라 VTR 장치의 작동 단추를 눌렀다. 

 여자아이의 몸에 간밤의 잠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커피잔을 그 아이의 입에 대주었다. 

 “전 쫓겨나요.

 아이가 말했고, 화면에서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화면 안 여자아이의 금발을 흩날리게 했다. 지금의 유럽 쪽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나라면 이런 종류의 테잎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여섯살>이라는 제목의 테잎이었다. 빨간 스웨터를 걸친 열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테잎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뒷부분에 놓았다. 놀라운 일이 화면 안에서 벌어졌다.  “내가 널 어떻게 했니?”

 나의 물음에 여자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몸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여자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돌려 비난에 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손을 빼었다.

 새벽같이 아버지를 만나러 온 세 사람은 2층 응접실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그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 숙모가 데려온 변호사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사촌은 그들 맞은 편에 앉아 신문을 뒤적였다.

 “형.”

 내가 불렀다.

 “이리 와.”

 “넌 일찍 일어났구나.”

 숙모의 말을 나는 묵살했다. 눈을 뜬 변호사가 안경을 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숙부가 돌아간 날부터 그는 숙모의 변호사로 일했다. 

 사촌은 나선형 층계를 돌아 내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왔다.       “너무 일찍 왔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복도 끝으로 가 비상 계단으로 내려섰다. 안개가 걷혔다. 아침 첫 햇살은 우리가 돌아 내려가는 층계참의 모서리와 흰 벽, 그리고 키 큰 나무들 잎 위에 떨어졌다. 사촌은 까만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맸다.

 “형까지 올 줄 몰랐어.”

 사촌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잠을 더 자두는 게 낫지.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어쩌겠다는 거야?”

 “우린 그런 이야길 하지 말자.”

 숙부가 돌아갔을 때 그는 미국에 있었다. 나의 친형 둘도 그곳에 유학 중이었으나 그들은 숙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갔다면 허겁지겁 돌아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나의 형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기들이 차지할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조바심을 쳤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왔다. 둘이 터무니없이 차지해 나의 몫 은 바싹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장미밭을 지나갔다. 아버지의 경호원이 늙은 개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내가 던진 두꺼운 책이 아주 빗나가지는 않았다. 머리에 상처가 났다면서 경호원이 늙은 개를 끌어 갔다.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나는 풀장 가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사촌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너도 나를 귀찮게 생각하니?”

 우울한 목소리로 사촌이 물었다.

 “아니.”

 나는 말했다.

 “형을 귀찮게 생각할 사람은 없어. 난 형을 위해 하는 말야.” 

 “고맙구나.”

 사촌의 다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스프링보오드를 몇 번 구르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풀 깊은 바닥은 아직도 어두웠고 물은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일 분 가량 잠수해 있었다. 풀 밑바닥 모퉁이에 몸을 오그리고 앉아 느끼는, 일 분 동안의 숨막힘, 일분 동안의 거짓 절망이, 나중에 잃게 될 내 세계와 지금 멀어져 버리는 괴로움으로 변해 나를 조여 왔다. 발을 놀려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나는 빛의 굴절이 일으키는 파면의 진행 방향 끝에 앉아 있는 사촌을 보았다. 나는 수면 위에 엎드려 물장구를 치며 손을 번갈아 움직여 물을 긁었다. 물장구는 다리 관절의 힘을 빼고 쳤다. 얼굴을 돌려 물 밖으로 내놓는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숨은 물 속에서 쉬었다. 

 “밖으로 나가자.” 

사촌이 수건을 던져 주었다.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따갑게 느껴졌다. 정장을 한 사촌의 이마에 땀이 내배었다. 아버지의 운전기사가 자기 차를 타고 와 내리는 것이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숙모가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형도 숙모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계신지 알겠지?”

 “난 모르겠어.”

 사촌이 말했다.

 “네 말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하던 공부나 계속해야겠다.” 

 “이따 아버지를 뵙게 될 때 그 말씀부터 드려. 숙모가 하는 대로 따라 해서 이로울 건 하나도 없다구.”

 “그래야 큰아버지가 흡족해 하시겠지.”

 “형이 은강 그룹의 일원이라는 걸 강조하실 거야. 형도 우리 회사들이 우리 나라 전체 세금의 4%를 내고, 매상액이 국내 시장의 4.2%, 수출은 5.3%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

 “대단하구나.”

 “대단하지!”

 나는 사촌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경영을 할 권리가 아버지에게는 없어. 숙부가 돌아 가셨다고 그 분의 몫을 당신 앞으로 빼달라는 숙모의 말씀이 통할 것 같아? 형이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일을 익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제일 자연스럽지. 아버지가 인정하는 건 형뿐야. 나쁘게 들리겠지만, 숙모는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라구.”

 “어째서?”

 사촌은 아주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사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 위의 두 형에 비하면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강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왜 날카로운 칼을 뽑아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사람들에게 묻고는 했었다.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칼을 맞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 숙부가 아픔을 느꼈을까 하는 것도 그는 알고 싶어했다. 살인범이 노렸던 사람은 숙부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침묵했다.

 사촌은 범인을 이성과 감정, 의지와의 조화를 잃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았다. 그를 재판하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재판정에 나가 보고서야 피고가 정상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의 계획 살인을 정당 방위라고 우겨 주위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법정 방청석은 공장 노동자들로 꽉 찼다. 아버지의 젊은 비서가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것이 똑같은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아버지의 승용차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독일 사람들이 만든 최고급 승용차였다. 같은 독일제였지만 나의 것은 차체가 작고 앙증한 흰색 국민차였다.

 사촌이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한국 섬유 노동자의 임금은 얼마?” 

 그 곳 노동조합 대표가 선창하면 노동자들은 “시간당 19센트!” 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크게 외치면서 한낮의 광장을 돌 때 사촌은 그들이 우리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달 임금으로 45.6달러를 지급하고 일을 시킬 경영 집단이 있을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강 방직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칼을 뺀 것은 당연하다는 사촌의 주장이었다. 우리의 제도는 이제 안에서부터 파괴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칼을 품었던 사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식구들은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현실이 한 차원을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2차원이라면 일정한 한도와 경계가 있다. 사촌에게는 자신을 너무 분석하고 구속하는 습관이 있었다.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갑갑한 사람이었다.

 “변호사가 가잖아?”

 그가 물었다.

 “아버지의 비서가 쫓아내고 있어.”

 내가 말했다.

 “아버지의 변호사를 찾아갔어야 될 사람이야. 숙모를 믿고 실수를 했어.”

 “법률가는 사태를 똑바로 본다. 문제의 핵심을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파악해. 나는 그를 믿었어. 어머니가 새벽같이 전화를 해 불러냈어. 어머니는 한잠도 못 잤어. 저 사람이 없으면 말 한 마디 못할 거야. 사실을 정연하게 제시할 능력가가 가버렸으니 큰아버지를 뵈올 필요도 없겠어.”

 “몇 해만 기다리면 형은 자동적으로 중역이 돼.”

 웃으며 나는 말했다.

 “들어가. 아버지가 일어나셨어.”

 “나는 돈이 많은 것도 싫어.”

 피로한 목소리로 사촌이 말했다. 그에게는 괴로운 날이었다. 숙모는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방으로 올라가 옷을 입고 내려 왔을 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숙모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북쪽 벽에 은강조선 현장을 돌아보는 할아버지의 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변화를 무서워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 기술과 기계로도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아 높은 이윤을 얻었다. 몇 개의 소비재 생산 회사와 무역상사의 철저한 경영으로 그는 주주들의 투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재정을 안정시키며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사회의 수요변화에 꼭 앞장서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돈을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이상 모르는 방법과 기술에 매달려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아버지와 숙부가 합세해 변화에 대한 할아버지의 저항을 깨뜨려 버렸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경영 방법을 고수한다면 1년 후에 우리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고, 2년 후에는 현상유지도 어려울 것이며, 3년 후에는 선두 그룹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렸지만 아버지가 옳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늙어 손자를 갖게 된다면, 나의 손자들은 그들의 증․고조부 대의 터무니없는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낯을 붉히게 될 것이다. 일종의 경제 발작 시대로, 윤리, 도덕, 질서, 책임이 모든 생산행위의 적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알아 지금 사람들이 내세울 업적을 형편없이 깎아 내리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머리를 썼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고도화함에 따라 기업의 행동 양식도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경공업 분야에 머물러 있는 할아버지의 기업 그룹을, 머리와 지원만으로, 기계, 철강, 전자, 조선, 건설,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을 망라한 체제로 끌어올렸다. 말년의 할아버지는 그 무서운 성장 속도를 대하고 현기증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황금기로 안 60년대를 아버지가 숙부와 함께 뛰어든 격변기에 견주어 보면 소꿉장난 시절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의 접빈실에서 숙모와 사촌을 맞았다.

 “넌 아주 귀국해 버린 거냐?”

 아버지가 사촌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사촌이 말했다.

 “돌아가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아버지 장사를 모셨으면 됐지, 왜 얼른 돌아가지 않고 몇 달씩 허송하고 있는 거냐? 너도 내가 어머니 앞으로 회사를 떼어 드려야 한다고 믿고 있니?”

 “전 잘 모르겠습니다.”

 숙모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걸 알아야지.”

 아버지가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야. 나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시아주머님.”

 숙모가 겨우 입을 뗐다.

 “아버지의 권리를 이어받을 사람은 바로 너야.”

 아버지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조카에게 말했다.

 “공부를 끝내고 와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해야 돼. 잠시도 쉴 수 없는 상태가 어떤 건지 너도 알게 될 거다. 우리에게 지켜야 할 게 많아. 지키면서, 실제로 행동이 가능한 변혁을 늘 생각해야 돼.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근거 없이 성공한 걸로 믿고 있고, 기회만 있으면 때려부수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든가 안 되면 반대로 밀어붙일 힘을 가져야 된다. 저희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고마운 일은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너의 아버지 일을 나는 눈을 감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야. 이렇게 큰 희생을 우리가 치러 본 적은 없었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라면 전면전쟁이 일어났을 거다. 이 이상으로 신성한 전쟁 이유는 있을 수가 없어.” 

 “큰아버님 말씀 알아 듣겠습니다.”

 사촌이 말했다.

 “그러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만 있으면 안 된다는 그 신성한 이유를 똑같이 들겠죠.”

 “그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미국에서 필요한 돈은 그곳 지사에서 갖다 쓰거라.”

 그리고, 아버지가 숙모를 바라보았는데, 사촌의 지적대로 숙모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아버지는 일을 완전하게 끝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이 든 봉투를 넘겨주면서 동생 무덤의 풀이 마르기도 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고, 숙모는 사촌의 시선을 받는 순간 얼굴을 돌렸다, 숙모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주 쉽게 숙모와 사촌을 떼어놓았다. 숙모는 숙부의 죽음을 해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회사 하나를 경영하는 손아래 남자와 엉뚱한 일을 저지르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숙모가 남자와 자는 사진만은 볼 수 없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숙모의 눈썹은 아래로 처졌고, 순간적으로 까맣게 탄 입술에서는 짧은 숨소리가 새 나왔다. 면담은 간단히 끝났다. 숙모는 혼자 돌아갔다.

 나는 사촌과 함께 식당으로 가 아침 식사를 했다. 사촌이 너는 날마다 이른 아침에 수영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요트를 한 대 건조해 달라고 조르고 있으며, 그것이 실현되면 모험 항해를 떠나 보고 싶다는 것과 먼 바다로의 단독 항해에 대비해 지구력 훈련을 쌓는다고 말해 주었다. 사촌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치체스터가 탔던 것과 같은 요트를 우리 기술로 건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과 내가 모험 항해라는 말을 거침없이 써도 될 단계가 정말 온 것인지 알고 싶어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형도 잘 알고 있겠지만 미국은 세계 인구의 8퍼센트 미만으로 전세계 자원 소비의 반을 차지하고, 잘사는 그들 중 한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은 못 사는 아프리카. 아시아 빈민들 중 한 사람이 형편없는 식사를 통해 1주일에 취하는 열량보다 못할게 없다고 말했다.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이런 종류의 충격이 인정되는 이상 우리의 상태도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우리가 도입해 온 기술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사촌이 말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투였다. 그래서 집안에 해결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모험을 생각할 사람은 없다고 나는 말했다. 자연적 인성의 차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욕정을 자주 느껴. 그리고 계집애들과의 그 해결 횟수도 몇 배나 많은 편이야.”

 사촌은 나를 쳐다보았다.

 “넌 참 이상하구나. 말의 갈피를 못 잡아.”

 “이상한 건 그렇게 느끼는 형야.”

 “나도 정상은 아니야, 머리가 아파. 어머니는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어머니의 그 사진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

 “몰라.”

 사촌에게 나는 말했다.

 “내가 형이라면 숙부를 찌른 자의 선고 공판을 보고 미국으로 가겠어. 그 다음엔 모든 걸 잊고 그곳 생활에 젖어 버릴 거야. 가만 있어도 형 앞으론 이익배당이 나와 쌓이게 돼 있어.”

 “그렇겠구나.”

 사촌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빈틈이 없구나.”

 사촌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차로 태워다 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걸어나갔다. 밖은 무척 더웠다. 한여름 햇볕이 고민하는 사촌의 몸에 떨어졌다. 내 사고와 체질, 습성이 점점 국적 불명이 되어간다고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이 관찰 하나만은 그가 옳았다.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그가 인정한 셈이었다.

 나는 종종 미래의 일들에 대해 상상하고는 했다. 멀지 않은 장래에 형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에는 사촌도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사촌을 문제삼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친형 둘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 둘 다 머리도 좋고 힘도 세었다. 장난감을 놓고 벌이는 작은 욕망의 저울질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늘 지기만 했다. 증기기관차. 탱크. 장갑차. 비행기. 대포. 기관총. 권총에 꼬마 병정들까지 빼앗기고 계집애 동생과 함께 인형의 집, 인형의 침대에 인형들을 재우면서 놀았다. 아빠, 불 좀 꺼주세요, 우리 아기가 자요, 동생이 속삭이듯 말하면 콩알만한 전등의 스위치를 조심스럽게 돌려 불을 끄면서 두 형이 대포를 쏘아 대고 병력을 투입해 인형 나라의 평화를 깨뜨려 버리지나 않을까 가슴을 조이고는 했다. 그러자 형들은 나더러 오줌을 앉아서 누라고 말했고, 어머니의 친구들이 어쩌다 오면 경훈이는 예쁘기도 하구나, 계집애보다도 예뻐, 참 예뻐. 나의 몸을 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나는 공부로만은 이기고 싶었지만 형들은 교사를 골탕먹일 생각만 하고 책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좋은 점수를 얻어 나를 납작하게 눌러 버렸다. 내가 이 세상에 나 눈물로 드린 최초의 기도는 악마 같은 둘이 천당으로 가도 좋으니 제발 죽어 내 옆에서 없어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큰형이 자라 차에 계집애를 태워 몰고 다니다 교통사고를 냈을 때 나는 두 번째 기도를 올렸다. 큰형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박살이 나는 바람에 큰형을 따라 다니며 알몸으로 더러운 정액을 빨아들였던 계집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큰형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의 기도는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큰형은 보름도 안되어 퇴원했다. 입건도 되지 않았다. 큰형이 사고를 낸 한밤중 그 시간에 보일러공과 함께 기사들 방에서 잠을 잔 어머니의 운전기사가 큰형 대신 경찰을 찾아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 죽은 계집애네 부모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라고 일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되뇌인 말은 <희생>이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생애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형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내가 아버지의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과 빨리 자라 일을 하고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몹시 기뻐했다. 아버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전쟁이었다. 이상하지만 사회적인 여러 변화도 아버지에게는 같은 의미를 지니었다. 이것들은 한 순간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수 있었다.

 그것을 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긴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두 형을 제일 무서워했다. 사촌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법정 방청석에 앉아, 남쪽 공장에서 올라온 한지섭이라는 사람이, 숙부를 찌른 살인범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쁜 자식!”

 그는 반란을 꾀하는 반도와 같았다.

 “누가?”

 사촌이 물었다.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왔던 자식 말이야.”

 “그렇게만 보지 마.”

 “형은 정신이 있어? 누굴 어떻게 한 자의 재판인데 이러지?”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야. 그리고, 방청석을 메운 공원들은 그가    옳다고 믿고 있었어. 그들은 왜 그가 옳다고 믿었을까?” 

 사촌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나는 지섭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일부러 초라한 옷을 입고 나타난 그는 심한 편견과 오만에 악의까지 갖고, 진실은 덮어 버린 채,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붙였다.

 한여름 한낮의 햇볕이 건물과 가로수, 느릿느릿 달려가는 자동차들 위에 뜨거운 기운을 뿜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한 시 반의 짧은 그림자를 끌고 걷다 그늘이 나타나면 재빨리 들어가 이미 젖어 버린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을 닦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버리고 떠났다. 차도 많이 빠졌다. 법원 소송 관계인 휴게실 맞은편에 차를 대고 내리자 훅하는 열기가 숨을 막아 왔다. 휴게실에서 나온 회사 비서실 사람들이 공판정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지나가는 왼쪽 나무 그늘 속에 공원들이 서 있었다. 숙모와 사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함께 새벽같이 왔다 각기 돌아간 뒤의 두 사람을 사흘 동안 보지 못했다. 내가 지나갈 때 나무 그늘 속의 공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보기만 했다.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서자 햇빛을 받아 늘어진 줄이 나타났다. 중간까지의 사람들만으로 공판정은 넘칠텐데 내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줄은 자꾸 늘어났다. 대부분이 은강공장에서 올라온 스무 살 안팎의 공원들이었다. 아예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매점과 법정 건물 벽 그늘에 앉아 개정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매점 공중전화기 앞에 서있는 두 여공에게 다가가 피고인의 아버지가 난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계속 조업 공장에서 밤일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잔 듯한 두 여공은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머뭇거리던 한 아이가 모른다고 말했다. 그 옆의 여자아이는 달랐다. 그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왜 알려고 하는지도 몰라 말해 주고 싶지 않지만, 꼭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아 말해 주는데, 잠시 후에 판결을 받을 피고인의 아버지는 사실은 굉장히 큰 거인이었다고 단숨에 말했다. 내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줄에서 나온 몇 명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줄 밖 그늘에 있던 아이들까지 왔다. 그 중의 한 아이가 

 “형씨, 나 좀 봅시다.” 

 했다. “뭐요?” 

 내가 묻자, 

 “당신이 우리 회장님 아들이라고 아이들이 그러는데 사실이오?”

 건방진 말투로 물었다. 내 안에서 무엇이 욱 치밀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누렇고 모가진 얼굴에 유난히 눈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적의와 반감을 나타내는 짧은 노랫소리를 나는 들었다.


 우리 회장님은 

 마음도 좋지.

 거스름돈을 쓸어

 임금을 준대.


 아주 짧았지만 상상도 못했던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른 공원을 돌아볼 수 없었다. 보나마나 나이보다 작은 몸뚱이에 감춘 적의와 오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서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나의 표정을 뜯어보면서, 우.리.회.장.님.은.마.음.도.좋.지.거.스.름.돈.을.쓸.어.임.금.을.준.대, 같이 입을 벌렸다. 웃지도 않고, 나무 위 매미의 울음소리보다 작게. 그래서, 법정 경고판 앞쪽 줄에 선 사람들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회사 비서실 사람들이 어디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우리의 명예와 상관이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는 물론 나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없었다. 

 두 형이라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나를 참담한 기분으로 몰아넣었다. 마음이 집으로 달려갔다. 내 마음은 아버지의 22소구경 권총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연발 엽총에 작렬탄을 장전해 들고 뛰어왔다. 나는 그들을 겨냥했다. 쏠 필요는 없었다. 나를 둘러쌌던 공원들이 아들의 판결을 보기 위해 막 도착한 부인에게로 달려갔다. 숙부를 죽인 살인범이 부인의 큰아들이었다. 둘째아들과 딸이 부인 옆에서 있었다. 작지 않은 그 여자가 난장이와 어떤 성생활을 했을까 나는 상상했다. 공원들이 부인을 법정 문 앞으로 안내해 갔다. 숙모와 사촌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독재적인 아버지는 항상 그의 가족을 괴롭히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못한 사람들일수록 명령하기를 좋아하며 복종을 요구한다. 나는 모르는 난장이를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의 작은 잘못도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때리고, 벌도 심한 것으로 골라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는 잠을 안 자는 독재자였을 것이다. 그의 권력은 사랑. 존경. 믿음을 모르는 그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사용하게 한 무서운 매와 벌 때문에 바른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큰아들은 공격목표를 잃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없게 길들여진 큰아들의 그 불확실한 공격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숙부를 죽였다. 그 때 법원에 닿아 비탈길을 올라오는 사촌을 잡고 나의 생각을 말했는데 사촌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을 들어 저었다.

 “아냐.”

 사촌은 간단히 말했다.

 “네가 틀렸어. 그가 공판정에서 한 말을 그대로 믿어야 돼.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도와 한 일을 난 알아.”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이라도 두 형이 사촌을 몰아낼 음모를 꾸민 다면 나는 기꺼이 형들 편에 가담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사촌은 불볕 속에서 땀을 닦았다. 닫혔던 법정문이 열리자 공원들은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우리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법정 안은 시원했다.

 “우리 아버지들이 뭘 어떻게 했다고 그랬지?”

 내가 물었다.

 “이들을 괴롭혔어.”

 방청석 공원들을 돌아보며 사촌이 속삭였다.

 “인간을 위해 일한다면서 인간을 소외시켰어.”

 “형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참 근사해.”

 내가 말했다.

 “사실은,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돈을 주었지.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이들야.”

 사촌이 웃었다. 그 시간에 그 법정에서 웃은 사람은 사촌밖에 없었다. 피살자의 아들이 살해범의 선고 공판을 기다리며 웃는다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강공장 노동조합 간부인 듯한 여자아이가 내가 모르는 그 난장이의 부인과 아들. 딸을 피고석 뒤쪽 나무의자로 이끌어 앉혔다. 방청석은 이미 꽉 차버렸는데도 계속 들어오려는 바깥 사람들로 문쪽은 어수선했다. 정리가 방청인들을 헤치고 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다. 숙모는 오지 않았다. 한집에 사는 사촌도 사흘 동안 얼굴 한번 못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공판 결과를 아버지에게 보고하기 위해 나온 그룹 본부 이사와 비서실 사람들 사이에 앉았다. 뒤쪽 벽 밑에 놓여 있는 냉방기가 찬 공기를 내뿜었다. 방청인을 입정시키면서 화가 난 듯한 정리가 공원들에게 옷을 바로 입고 조용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저 뒷분, 웃옷 단추 좀 끼우세요.”

 정리가 말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몇 사람이 소리를 내어 울었는데 오늘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울 수도 없나요?”

 쉰 목소리로 한 여공이 물었다.

 “운다고 누가 뭐랍니까. 소리내 울지 말라는 거죠. 극장 구경을 온 것도 아니고, 울고불고하면 서로 곤란해요.”

 “극장 구경이나 가 울 사람은 여기 없어요.”

 “그럼 늘 울어요?”

 “그래요. 분해서 날마다 울어요.”

 정리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나는 쉰 목소리의 여공을 찾아보았다. 아주 못생긴 계집아이가 서 있었다. 대부분의 공장 작업자들이 그렇듯이 그 계집아이도 유난히 누런 피부에 평면적인 얼굴, 낮은 코, 튀어나온 광대뼈, 넓은 어깨, 굵은 팔, 큰 손, 짧은 하반신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열 아홉 아니면 스무 살 정도였는데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천 날을 고도에서 함께 보낸다고 해도 자고싶은 생각이 안 날 아이였다. 공장 노동이 생명 유지를 위한 그 계집아이의 생업이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아이의 근육활동뿐이었다. 

 공장 노동이 방청석을 메운 공원들에게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된다면 아버지도 아버지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나는 지루했다. 장내 정리가 되고 시간도 되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초조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서류 봉투를 든 변호사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는 내가 모르는 그 난장이의 부인에게로 다가가 몇 마디 말을 하고 손을 잡아 주었다. 부인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변호사는 방청석을 한번 돌아본 다음 법대 아래 바른쪽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안경을 쓴 젊은 변호사였다. 그는 방청인들이 자기에게 호의와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그를 본 순간 나의 속 밑바닥에서부터 부글부글 울화가 끓어올랐다. 중죄 재판에 변호인이 끼여들어 죄인을 싸고도는 법제도를 왜 그대로 두고 있는 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숙부 살해범에서 죄가 없는 것처럼 감싸면서 사건 성격을 아주 바꾸어 버리려고 했다. 담당 검사가 사태 파악을 잘못했더라면 그의 음모에 휘말려들 뻔했다.

 검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공익을 대표할 자질을 완전히 갖춘 사람으로 인상과 옷차림까지 깨끗했다. 재판장이 숙부 살해범인 난장이 큰아들의 이름, 나이, 본적, 주소, 직업을 확인해 인정신문을 끝내자 검사가 공소장에 의한 기소 요지를 진술했는데, 그는 거기서 살인, 소요, 특수 협박, 특수 손괴, 폭발물 예비 음모 등의 죄명을 들고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까지 정확히 밝혔다. 직접 신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판장이 피고인은 각개의 신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피고인 진술 거부권을 일깨워 주었지만 난장이의 큰아들은 검사의 모든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피고는 은강 방직공장 보전반 기사 조수로 있으면서 열 다섯 개   의 서어클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서어클의 회원은 같은 공장 근로자들이었고, 그 회원 수는 백오 십명 정도였죠?”

 “그렇습니다.”

 “그 백오십 명이 공장에서 동료 공원 열명씩을 설득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피고는 각 서어클 책임자에게 전달 사항을 말하면 천 오백 여명 명의 공장 종업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알 수 있었죠?” 

 “그것이 무엇을 뜻하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아요. 피고는 197x년 x월 x일 전 종업원은 작업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오라고 지시하지 않으셨읍니까?”

 “했습니다.”

 “모두 그대로 움직였죠?”

 “네.”

 “피고는 전 종업원의 단식을 종용했고, 나중엔 과격한 공원들과 함께 작업장으로 들어가 기계들을 파괴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과 다릅니다. 흥분한 몇 명이 직포과로 들어가 기계를 망가뜨리려고 한다는 조합 지부장의 말을 듣고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틀에 약간의 손상을 입혔습니다만 간단히 수리해 계속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고의 방에서 질산나트륨과 황, 그리고 목탄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누가 구입한 것입니까?”

 “제가 구입했습니다.”

 “왜 필요했죠?”

 “화약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 만들었습니까?”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질산나트륨, 황, 목탄을 이용하면 동일 조성에서 강도가   세어지고 흡수성이 있어 폭발물을 자가 제조하여 즉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 아닙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 시험해 볼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제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폭발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폭발물 제조를 포기하고 칼을 샀습니까?” 

 “네.”

 “이것이 그 칼이죠?”

 “그 칼입니다.”

 “이제 197x년 x월 x일 오후 여섯 시 십삼 분, 은강그룹 본부 빌딩에서 한 일을 말해 주겠습니까?”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칼로?”

 “네.”

 재판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무서운 악당, 그 난장이의 큰아들은 뉘우치는 빛 하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할 마음으로 와 아버지를 너무 닮았던 숙부를 아버지로 잘못 알고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 시간에 아버지는 그의 방에서 각 회사별 매출 실적을 확인하는 중이었고,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숙부는 경비원들이 경비를 소홀히 한 틈을 이용, 대리석 기둥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다 튀어나온 범인의 칼을 심장에 맞고 쓰러졌다. 찔린 부위가 너무나 치명적인 곳이어서, 사촌이 알고 싶어한 것이지만, 숙부는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판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악한 중죄인에게까지 관대한 법을 가지고 있었다. 내 식으로 하라면 자백과 증거가 일치하는 순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살해범의 목을 매어 달았을 것이다. 뼈를 부러뜨린 자의 뼈를 똑같이 부러뜨리지 않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뼈가 부러진 불구자로 앓다 죽게 될 것이다. 

 숙부는 이미 땅속에 묻혔는데, 공원들이 일을 하러 공장으로 갈 때 볼 수 있도록 은강 공장지대에 달았어야 했을 난장이의 큰아들은 교도관의 보호를 받아가며, 계속 법정에 나와 섰다. 변호인의 반대 신문에 의한 피고인의 진술을 들어보면 은강 공장 근로자들의 이마에서 땀을 짜낸 사람, 그들의 심신을 피로하게 한 사람,결국 그들을 불행하게 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변호인의 물음 하나 하나가 피고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해 던져지는 것으로 나에게는 들렸다. 

 그들은 마치 발기발기 찢어 해부할 부정한 사회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소송과 직접 관계없는 사항까지 끌어들여 검사의 이의, 재판장의 이의 인정과 제한을 받아가면서 신문, 진술을 계속했다. 변호인은, 자기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피고인은 집에서는 한집안을 이끌어 가는 장남, 좋은 형, 좋은 오빠였고, 공장에서는 책임감 강한 산업전사, 이해심 많은 동료, 어려운 사람들을 앞장서 도와 고통을 나누어지는 신의의 동지였고, 노동문제를 연구, 토론하는 모임에서는 언제나 서로간의 이해와 화해, 사랑을 주장한 학도요, 지도자였는데 이러한 피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저 끔직한 살인을 생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임금, 휴가, 부당해고자 복직 문제들을 놓고 회사와 개선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합의를 보지 못한 외에, 노조 대의원 및 임원 선거를 평화적으로 실시하려는 조합원들의 노력을 사용자가 힘으로 짓밟아 노.사 협조를 일방적으로 파기함은 물론, 산업 평화까지 스스로 깨뜨려 노.사의 불이익을 초래함을 묵도하는 순간 은강그룹을 이끌어 가는 총책임자, 즉 회장을 살해하겠다는 우발적인 살의를 품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밭은기침을 했다. 밭은기침을 하며 머리를 떨어뜨렸다. 그가 머리를 떨어뜨린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의 여동생이 울음을 참기 위해 입에 손수건을 대었다. 그의 여동생은 참았는데 뒤쪽의 몇 명이 못 참고 소리를 내었다. 정리가 여공들을 말렸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우발적인 살의가 아니었다고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변호인이 말했다.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주시겠습니까?”

 “우발적인 살의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 당시의 심적 상태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미 철도 들고, 고생도 많이 해본 공장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려, 엉엉 소리내어 우는 현장에 저는 서있어 보았습니다. 웬만한 고생에는 이미 면역이 된 천 오백 명이, 그것도 일제히 말입니다. 교육도 받고, 사물에 대한 이해도 깊은 공장 밖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들이었습니다. 제가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뇨. 내가 믿겠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살해 동기입니까?”

 “개새끼.”

 나는 외쳤다. 내가 외치는 소리를 옆자리의 사촌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왜 그 따윌 생각해야 된단 말인가. 아버지가 바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그런 것 말고도 계획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할 게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작은 악당은 몰랐다. 발육이 좋지 못해 우리보다 작고 약하지만 그 작은 몸 속에 모진 생각들만 처넣고 사는 이런 부류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 경영, 경쟁, 독점을 통해 누리는 생존을 공박하고 저희들은 무서운 독물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 간다고 단정했다. 그 중독 독물이 설혹 가난이라 하고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저희 자유의사에 따라 은강공장에 들어가 일할 기회를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마음대로 공장일을 놓고 떠날 수가 있었다. 공장일을 하면서 생활도 나아졌다. 그런데도 찡그린 얼굴을 펴본 적이 없다. 머리 속에는 소위 의미 있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웃는 불가능한 이상 사회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늘 욕망을 억누르고, 비판적이며, 향락과 행복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는 했다. 이상에 현실을 대어 보는 이런 종류의 엄숙주의자들은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그 중의 하나가 이제 살인까지 했는데 변호인은 그를 살려내기 위해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한지섭이었다. 그가 증언대로 올라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조금 큰 악당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남쪽 공장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손가락이 여덟 개밖에 안 되었다.아버지의 공장에서 두 개를 잃었을 것이다. 콧등도 다쳐 납작하게 내려앉았고, 눈 밑에도 상처가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에게 손가락이 여덟 개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잃은 두 개가 사물에 대한 그의 이해에 끼쳤을 영향을 나는 생각했다. 그는 개관적인 눈까지 잃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가 떠올린 것은 호수의 물빛, 뜨거운 태양, 나무와 들풀, 거기 부는 바람, 호수를 가르는 모터보트, 잔디 위에서의 스키, 이상한 버릇이 있는 여자아이, 그리고 아주 단 낮잠들이었다. 벌통과 사슴 사육장이 보였다. 낮잠 뒤에 대할 식탁도 떠올랐다. 나는 독서를 하기로 했다. 미래 공학과 경제사가 내가 읽어야 할 책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이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뒤의 것은 이미 상당 부분을 읽었다. 월터스코트가 인용된 곳을 읽다가 나는 웃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 공장 지대를 돌아보고 이 나라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폭발물로 꽉 차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허풍장이 도학자는 그 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공장주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만체스터나 브래드포드의 초기 발전 사항이 도학자의 눈에는 사회적 폭발을 향해 치닫는 미친 짓거리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궁금증 때문에 나는 졌다. 그 법정에 앉아 있는 한지섭이라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보기에 그것은 강요된 행위였다고 지섭이 말하고 있었다. 변호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강요했겠느냐고 묻고 그것을 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섭은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의 증거로 삼남매가 은강공장에 나가 일해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난장이 일가의 비문화적인 생활과 난장이의 부인이 써 온 낡은 가계부를 들었다.

 나는 하도 화가나 그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콩나물값, 소금값, 새우젓값에서 두통. 치통 약값까지 읽어 내려가더니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임금, 그리고 노동력 재생산이 어렵다는 생활 상태를 두서없이 주워 섬겼다. 물론 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은강그롭의 부의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으로 계속해 받는 지원과 보호, 뛰어난 머리들로 구성된 고학력의 경영집단, 그들이 추구하는 저임금과 높은 이윤, 그래서 이젠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는 인간 훼손, 자연 훼손, 거기다 신의 훼손까지 들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 대한 난장이 큰아들의 말은, 슬픈 일이지만 정말 옳은 것이며, 그가 아버지를 어떻게 할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버지가 쓴 억압의 중심지에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억압이란 말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산하 회사, 공장 종업원들에게 쓰는 억압은 언제나 생존비, 또는 생활비와 상관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핍박을 의미한다고 지섭이 말했다. 그는 계속해 이런 억압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억압을 정면으로 받는 중심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저항권 행사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이든가 생존을 포기한 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들을수록 화가 나는 말뿐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이 세상 최고의 악당은 반대로 우리였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해 버렸고, 법 앞에 평등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적 특수 계급을 인정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인간적인 생활을 할 권리를 빼앗았다. 나는 앉아서 화를 눌렀다. 변호인은 지섭에게 노.사간의 첫번째 문제가 되었던 임금 인상과 부당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알고 있었고, 조합원들이 요구한 인상률은 회사가 올린 이익금과 물가 상승률, 근로자 생계비를 생각할 때 아주 정당한 것이었으며, 조합원이 조합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또 회사에서 지어 준 공장 안 교회가 아닌 공장 밖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찬송했다고 트집을 잡혀 해고당한 부당 해고자들의 복직 요구도 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동안 익힌 공장일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해고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의 위반이었으니까.

 “그리고 사용자측과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지부 대의원 및 임원 선거를 맞게 되어 걱정이라는 말을 저는 들었습니다.” 

 지섭이 말했다.

 “그래서 연기를 해보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왜요?”

 변호인이 물었다.

 “회사에서는 빨리 치러버릴 생각이었답니다. 선거 관리 위원회까지 따로 구성해 놓고요.”

 “본래 그것은 어디서 하게 되어 있습니까?”

 “선거 관리 위원은 대의원 대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불법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회사쪽 사람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입후보 등록 마감일을 앞당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부장이 총회를 소집해 보고 대회를 가지려고 했지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던 거죠. 제가 은강으로 간 것은 지금 피고석에 서 있는 김영수군과 임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한 직후였습니다.”

 “치료를 받다 말고 서울로 오려고 출발했다는데 그것도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왜 서울로 오려고 했을까요?”

 “본사로 올라가 높은 분들을 만나 봐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수군은 공장에 나와 있는 사용자 측 사람들이 이미 이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러나 버스 터미널에서 예의 그 폭력배들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모두 공장 원면 창고로 끌려가 또한 차례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영수군에게 들었습니다.” 

 “전 종업원이 작업을 중단하고 공장 마당으로 나왔던 것이 그 다음 날이었죠?”

 “그렇습니다.”

 “그 때 목격한 상황을 간단히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지부장이 조합원들에게 그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많은 조합원들이 임원들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은 마구 외쳐대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고 한 쪽에선 조합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수군이 그들을 진정시키고 조합을 빼앗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노동자들의 유일한 단체이며 생명인 조합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 동안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고, 먹지도 말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김영수씨가 흥분한 조합원들과 함께 기계를 파괴했나요?” 

 “뭘 파괴한다는 것은 나쁜 짓입니다. 비싼 기계의 파괴란 더욱 말    이 안됩니다. 영수군이 이 세상에서 뭘 파괴했다는 소리를 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급하게 결과를 물어 안되었습니다만, 그 뒤의 조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스운 짓거리의 연속이었다. 지섭은 물론 깨졌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못 되었다.아버지는 월례 사장단 회의에서 아무리 제한된 운동밖에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또 협조적인 사람이 이끄는 노조라고 해도 그것이 기업에 이익을 줄 리는 없으며, 어느 날 화로의 재 속에서 불씨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 불씨에 불을 붙여 일어나면 기업에 해롭고 우리 모두에게 해로울 게 뻔하기 때문에 현명한 경영자라면 조금 시끄러운 저항을 받아도 지금 해결하지,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맡겨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아버지의 방에서 아버지의 메모를 보았다. 그 이상의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버지는 권위를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노조는 우리 전체의 구조를 약화시키는 악마의 도구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메모 속에 넣지는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앞으로 우리의 어느 공장에서 노조가 결성될 경우 해당사 중역들은 문책을 당할 것이며, 혼란기에 이미 결성이 된 사의 경우는 그 노조를 접수해 본래의 기능을 바꾸어 놓으라고 곧이곧대로 지시했다면 스스로 권위에 손상을 입힌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변호인은 끝으로 부연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을 리가 없었다. 난장이의 큰아들과 자기는 전부터 친교가 있었고,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아 잘 아는데 난장이의 큰아들은 결국 자기가 가졌던 이상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그가 지금 피고석에 서있는 것도 그가 가졌던 이상이 깨어지며 나타난 반대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지섭이 말했다. 나는 이때부터 심증을 굳혔다. 지섭은 계속해 난장이의 큰아들이 상대한 것은 어떤 계층 집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자기와 난장이의 큰아들은 처음부터 평범한 상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일깨워 분명히 해둔 게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사용자는 다 같은 하나의 생산자이지 이해를 달리하는 두 등급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을 또박또박 끊어 정확히 발음하려고 애썼다. 증언대 위의 두 손은 그때 떨렸다. 두 손의 손가락은 다 합해야 여덟 개밖에 안 되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바로 뒤 방청석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목까지 올라온 울음을 눌러 참고 있었다. 나의 심증에 틀림이 없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에게 빛줄기와 같은 깨달음을 준 사람이 지섭이었다. 저희는 사랑이 기본이 되는 같은 이상을 가졌다. 저희는 인간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다. 저희는 피해자다. 그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꼬부려 끌어들이더니 더러운 바지 주머니에서 더러운 손수건을 꺼냈다. 눈두덩의 땀을 그는 그 더러운 손수건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나는 모레 떠나기로 했다.”

 사촌이 말했다.

 “잘 생각했어.”

 내가 말했다.

 “나도 얼마 있다 독일에 갔다 올 것 같아.”

 “왜?”

 “크루프와 오거스스티센이 거기 있기 때문야. 가 견학을 해야지. 아버지의 꿈은 이제 제철소를 갖는 거거든. 형들이 귀국하면 나는 독일에 가 공부해야 돼.”

 우리는 그룹 본부 이사와 비서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기다렸다. 서기가 들어와 법대 아래 중앙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공판 때마다 법대 아래 중앙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나는 보았다. 법정 안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모두 닫았기 때문에 공기가 탁했다. 촘촘히 들어찬 공원들의 몸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냉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 공기가 공원들의 몸 열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이 몸 냄새만 풍기지 않았더라도 참기가 쉬웠을 거였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사촌이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지섭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나도 돌아보았다. 정말 없었다. 공판 때마다 남쪽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던 그가 정작 선고 공판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까닭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난장이의 작은아들도 우리처럼 돌아보았다. 부인이 작은아들을 잡아 앉혔다. 겁을 먹었구나! 나는 단정했다. 한지섭은 비겁자다!

 내가 공판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때 거리의 사람들은 길어진 그림자를 끌고 걸었다. 그림자는 길어졌으나 여전한 불볕더위였다. 싱싱한 여자아이들은 더위를 타지 않았다. 미처 못 떠난 여자아이들이 나른한 육체들만 남아 허위적거리는 서울을 지켰다. 그 아이들이 떠날 채비를 마치면 먼저 몸을 굴려 구리빛이 된 아이들이 돌아와 서울을 지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아이들은 얇은 옷을 입었다. 우리가 여름에 생각하는 것은 그 얇은 옷 속에 감추어진 향락이다. 

 지난 겨울에 뜨거운 햇볕과 짠 바닷물, 그 바닷물의 짠맛을 그대로 간직한 입맞춤으로 떠올려 본 여름의 향락은 한결같이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우리 동네로 들어서면서 내 작은 차의 유리문을 내리고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과 풀 냄새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그 냄새는 법정 방청석을 메웠던 공원들의 몸냄새와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더러운 냄새를 풍겼다. 집에 닿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어머니는 그들이 땀을 흘려 일한 다음 잘 씻지 못해 땀냄새를 풍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공장에 충분한 목욕 시설을 갖추려면 생산비 절감을 위한 획기적인 방법을 알아내든가. 그게 안 될 경우에는 공원들의 임금 인상폭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해 나는 웃었다. 육체를 떠나 영원히 사는 영혼이 정말 있다면 숙부의 영혼은 오늘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은 어떻게 됐니?”

 어머니가 물었다.

 “말씀 안 드렸어요?”

 “아니.”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그랬구나, 오, 하느님, 이라고 어머니의 입술이 말했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교도관에게 이끌려 들어오고, 검사가 들어오고, 이어 판사가 들어와 그 재판의 마지막 부분은 아주 빨리 진행되었는데, 검사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판사가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을 때 검사의 구형을 먼저 보고도 설마 설마 믿지 않고 기다려 온 방청석의 공원들은 짧은 놀람의 소리를 질러 그 소리에 저희들을 묻었다. 몹시 부드러웠던 그들의 혀는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은 정신을 차려 새삼스럽게 죄의 크기와 형벌의 크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들었던 고개를 떨어뜨렸고, 그의 두 동생은 벌떡 일어섰다가 창자를 끊으며 주저앉는 그들의 어머니를 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을 살려낼 마음으로 우리를 몰아쳤던 변호인은 천장만 보았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판단력이 부족한 공원들에게 많은 혼란과 착각을 주었다. 마음이 좋아 보이는 검사는 온화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이번 일들로 해서 매우 중요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람의 생명. 고통과 관련된 일이라 그렇다면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래요.”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게 아녜요. 우리 공장 노동자들이 행복한 마음을 갖고 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가 알아냈어요.”

 “경훈아.”

 어머니가 웃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아무리 좋은 공장에서 일해도 그   렇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이 행복해질 수 있겠니?”

 “약을 쓰면 돼요.”

 “약이라니?”

 “그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만 하게 하는 약을 만드는 거예요. 그들이 공장에서 먹는 밥이나 음료수에 그 약을 넣어야죠. 약은 우수한 연구진을 구성해 만들게 해야 돼요. 처음엔 경비가 많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이상 좋은 방법은 있을 수 없어요.” 

 “그만 둬라.”

 어머니가 말했다.

 “생각하는 게 맨 끔찍한 것뿐이구나.”

 “끔찍한 건 제가 아녜요.”

 나는 말했다.

 “정말 끔찍한 건 이 세계라구요. 몇몇 나라들이 그들이 사회제도로부터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미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어요.”

 “병이 난 사람들이겠지.”

 “질병하곤 상관이 없는 일예요.”

 “어쨌든, 너의 그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진 마라. 아버지는 작은 일 하나 하나로 너희들을 판단하셔. 나는 네가 위의 형들하고 똑같은 기회를 갖는 걸 보고 싶어. 내 말 알아듣겠니?”  

 나는 한번도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주어지는 어머니의 사랑의 크기는 언제나 같았다.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여러 이질적인 것들을 조화하여 전체를 만드는 재능이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권한을 넘겨줄 수 없다는 통보이기도 했다. 숙부가 돌아가기 전에는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가 집안까지 들어와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계공장 쪽에서 심상치 않은 문제가 일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랬구나! 내가 혼자 말할 차례였다. 남쪽에 있는 공장이었다. 여덟 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나이가 그곳에서 올라오고는 했었다. 

 그는 공원들보다 더 더러운 옷을 입고, 공원들 것보다 더 더러운 손수건을 썼다. 멍청한 사촌이 그의 소식을 들었다면 역시 그는 다르다고 말했을 것이다. 지섭이 먼 곳에서 나의 머리를 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난장이네 식구들을 위로하러 올라올 수가 없었다. 그는 우리 반대쪽에 서 있는 사나이였다. 그는 자신을 분석하고, 동료들을 분석하고, 저희들을 경제 권력으로 억압한다는 우리를 분석하다가 불행해질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애국부녀봉사회의 불우이웃돕기 모금 집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젊은 여비서가 어머니를 도왔다. 나는 그 여자에게 바짝 다가서며 우리가 이 사회에 진 빚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섰다.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얇은 옷 속에 감추어진 쾌락의 작은 도구들을 나는 상상했다. 나의 정욕이 내 머리를 산란하게 했다. 방으로 올라가 어머니와 함께 출발하는 그 여자를 보았다.

 수위가 철문을 밀어 제쳤다. 어머니의 승용차는 이팝나무 숲을 끼고 돌아 나갔다. 잠시 후에 집사가 물어왔다. 풀장의 물을 갈아야겠는데 물을 빼 버리기 전에 아이들이 들어가 좀 놀게 한 다음 청소를 시켜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며칠 후 친구들을 데리고 섬에 갈 생각이니까 연락을 취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서 풀을 깨끗이 씻어 내기 위해서라면 물론 좋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한 아이는 올라와 나의 책 정리를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맙다고 말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나는 VTR 장치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들어 있는 테잎을 걸었다. 열여섯 난 금발의 여자아이가 두 팔로 남자의 몸을 안았다.

 사흘 전 아침의 여자아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올라왔다. 인간공학이라는 책이 볼록한 가슴 부분을 눌렀다.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힌데미트를 좋아하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여자아이의 팔을 잡아채 책을 떨어뜨렸다. 

 금발 아이의 옷은 어깨선에서부터 풀어져 내렸다. 

 “봐!”

 나는 말했다. 

 “너희 텔레비전하곤 틀리는 거야.”

 여자아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놀라운 일이 화면 안에서 벌어졌다. 여자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보았다. 그 아이는 어깨와 가슴으로 숨을 쉬었다. 내 손이 가 닿자 파르르 떨었다. 여자아이들이 그 작은 몸 속에 생명의 강을 안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화면 안 남자가 금발 아이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이제 너는 여자가 되었다고 남자가 말했다.

 “그만 내려가.”

 몸이 달아오른 여자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물을 빼 버리기 전에 수영을 해.”

 여자아이는 하얘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아이가 눈물이 핑 돌아 내려가자 나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경제사를 읽을 참이었다. 한 경제학자가 장차 책임 범위는 넓어질 것이라고 쓴 것을 그 책의 저자는 인용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깨기 직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물을 쳤다.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가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 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 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밖으로 나와 그물을 걷어 올렸다. 큰 가시고기들이 수없이 걸려 올라왔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 나와 수 천 수 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 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다 깼다. 서쪽 유리창에 황적색 저녁놀이 와 닿았다.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져 창가로 가 내다보았다.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빛을 운반해 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흰 벽이 저녁 놀빛을 숲 쪽으로 받아 던졌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늙은 개가 그 숲에서 기어 나왔다. 달아오른 몸으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여자아이가 늙은 개를 불렀다. 개밥 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 준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끌려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 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끝.




(2) 뫼비우스의 띠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 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 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 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가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한 학생이 일어섰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학생이 물었다. 

 교사는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이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는 말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주기 바란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제군이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입학 시험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앉은뱅이는 콩밭으로 들어갔다.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이어서 잘 여문 콩대를 몇 개 골라 꺾을 수 있었다. 콩밭에 잡초가 너무 많았다. 앉은뱅이는 꺾은 콩대를 가슴에 끼고 밭고랑 사이를 기었다. 조용해서 잡초의 씨앗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는 들을 수 있었다. 말이 콩밭이지 잡초 밭이나 마찬가지였다. 앉은뱅이는 황토길을 나와 콩대를 빼었다. 나무 타는 냄새가 좋았다. 날은 금방 저물기 시작했다. 그가 콩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을 붙여놓은 나무들이 빨갛게 타 들어갔다. 그는 깨어진 철판을 불 위에 놓고 콩을 까 넣었다. 바짝 마른나무는 연기 한줄기 내지 않고 잘 탔다. 그 나무는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꼽추네 마루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꼽추네 집을 무너뜨렸다.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이 한쪽 벽을 부수고 뒤로 물러서자 북쪽 지붕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다. 그들은 더이상 꼽추네 집에 손을 대지 않았고, 미류나무 옆 털여뀌풀 위에 앉아 있던 꼽추는 일어서면서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의 부인은 네 아이와 함께 종자로 남겨두었던 옥수수를 마당가에서 탔다.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은 다음 집으로 건너가기 전에 꼽추네 식구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도 덤벼들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에게 무서움을 주었다. 

 주위가 어두워 왔다. 앉은뱅이는 먹이를 찾아 나선 몇 마리의 쑥독새가 들판에 낮게 날으는 날개소리를 들었다. 그는 철판 위에 계속 콩을 까 넣었다. 나무 타는 냄새와 콩 익는 냄새가 좋았다. 호수 건너편으로 한떼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앉은뱅이는 호숫가 들판을 가로지른 그들의 실루엣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꼽추의 발짝소리를 기다리면서 철판을 불 위에서 끌어내렸다. 꼽추의 발짝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꼽추의 부인,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잘 참았다. 그는 익은 콩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꼽추네 마루는 아주 잘 탔다. 동네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에게 울면서 달라붙었다. 사람들은 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쇠망치를 든 한 사나이를 끌어내어 치고 받았다. 그는 몇 분 뒤에 피를 흘리며 일어나 한쪽 팔을 흔들더니 입에 물고 있던 피를 확 뱉어 냈다. 부러진 앞니들이 피에 섞여 나왔다. 

 앉은뱅이는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이 다가오자 코스모스가 한창인 길옆으로 비켜 앉으며 집을 가리켰다. 앉은뱅이네 식구들은 꼽추네 식구들보다 대가 약했다. 부인은 펌프대 뒷쪽에 쪼그리고 앉더니 때묻은 치마를 올려 얼굴을 감쌌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연신 두 눈을 쓸어 내렸다. 지붕과 벽은 순식간에 내려앉고 먼지만 올랐다. 

 앉은뱅이는 꼽추가 다가오는 발짝소리를 들었다. 꼽추는 들고 온 플라스틱통을 불기가 닿지 않을 곳에 놓았다. 통에 휘발유가 가득 들어 있었다. 꼽추는 이 무거운 통을 어두운 십리 벌판길을 걸어왔다. 그 벌판 끝 공터에는 약장수들이 은박지에 싼 산토닌을 팔고 있었다. 

 그들은 폐차장에서 망가진 승용차를 사 몰고 다녔다. 차 안에는 나왕 각목, 단단한 돌, 맥주병, 긴 못, 숫돌에 날카롭게 간 장검들을 실었다. 사범이라는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는 손으로 돌과 맥주병을 깨고, 나왕 각목을 부러뜨리고, 나무에 박아 끝을 구부린 긴 못을 이로 뽑았다. 그가 날카로운 장검을 손아귀에 넣어 나일론 끈으로 묶고, 그 칼끝을 배에 대어 눌러 뺄 때 사람들은 온몸 피부 조직이 칼날 밑에서 짓이겨지는 착각을 느끼고는 했다. 사범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힘은 무서웠다. 꼽추는 그에게서 휘발유를 얻었다. 승용차의 구조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앉은뱅이는 꼽추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동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꼽추가 주저앉아 그는 철판을 밀어 주었다. 꼽추는 콩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낮게 물었다. 

 "무슨 소리지?" 

 "응?" 

 "무슨 소리가 났어." 

 두 사람은 잠깐 숨소리를 죽였다. 

 "새가 날아다니는 소리야." 

 앉은뱅이가 말했다. 

 "쑥독새가 먹이를 찾아 날고 있어." 

 "밤에?" 

 "낮에 잠을 잔다구, 나무에 혹처럼 붙어서 잠을 자는 새야." 

 꼽추는 입으로 가져가던 콩을 철판 위에 놓았다. 앉은뱅이는 꼽추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무는 것을 보았다. 

 "왜 그래?" 

 앉은뱅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꼽추가 말했다. 

 "겁이 나서 그래?" 

 "무서울 건 없어."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들어가." 

 꼽추는 고개를 저었다. 꼽추네 아이들은 천막 안에서 잠을 잤다. 그 아이들은 잠들기 전에 천막 앞에다 불을 피웠다. 앉은뱅이네 아이들이 저희 집 부엌 문짝을 가져와 불 위에 놓았다. 다 부서져 팔 수도 없는 것이었다. 

 천막 안은 캄캄했다. 불 앞에 모여 섰던 동네 사람들이 흩어져 가자 집들이 들어섰던 어수선한 땅은 어둠에 싸였다. 어른들은 한줄기 부연 불빛을 따라갔다. 

 방범 초소 앞 공터에 승용차가 서 있었고, 사나이는 차안에서 몇 사람이 건네 준 종이쪽지와 인감증명을 들여다보았다. 사나이는 밖으로 돈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차 앞 쪼그리고 앉아 돈을 세었다. 

앉은뱅이는 철판을 다시 불 위에 올려놓고 콩을 까 넣었다. 그는 꼽추가 콩이라도먹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꼽추가 지난 며칠 동안 무엇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올 때가 됐잖아?" 

 꼽추가 물었다. 그의 담배는 바짝 타 들어가 두 손가락 끝에 걸려 있었다. 

 "됐어." 

 앉은뱅이가 말했다. 

 "그 자가 날 죽이지만 않게 해 줘, 살이 피둥피둥 찐 친구야. 그 몸무게로 눌러 오면 난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뻗을 거야." 

 "그러면서 날더러 들어가래?" 

 "자네가 들어가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다른 방법?" 

 "묻지 마." 

 앉은뱅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를 아파트 건물들이 가렸다. 벌판 서쪽 끝에서 동쪽 끝가지 잔뜩 들어선 아파트의 골조들이 시꺼먼 모습으로 서 있었다. 꼽추가 두 손으로 모래흙을 퍼 불 위에 뿌렸다. 앉은뱅이는 철판을 끌어내렸다. 그는 꼽추가 불을 다 끌때까지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마지막 한 점의 불까지 덮어 버리자 주위는 어둠에 싸였다. 

 "불을 켰어." 

 꼽추가 말했다. 앉은뱅이는 동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승용차의 불빛이 밤하늘을 몇 번 휘둘러 젓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어." 

 앉은뱅이가 철판을 밀어놓으며 말했다. 꼽추는 철판을 콩밭으로 차 버렸다. 그는 휘발유가 든 플라스틱 통을 들고 앞서 걸었다. 앉은뱅이는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길이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괴어 있었다. 물 가운데 디딤돌이 두 개 놓여 있어 꼽추는 어림짐작으로 그것들을 밟고 건너뛰었다. 그는 앉은뱅이를 기다렸다. 앉은뱅이는 물웅덩이를 피해 갈가 잡초 위로 기어 꼽추가 양쪽 주머니에 꼭꼭 감아넣었던 전깃줄을 꺼내 친구에게 보였다. 꼽추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른쪽 콩밭으로 들어가 숨었다. 앉은뱅이는 사방이 너무 조용해 겁이 났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시세 알아봤어?" 

 "응." 

 꼽추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 왔다. 

 "얼마래?" 

 "삼십 팔만 원." 

앉은뱅이는 더 이상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앞을 봐." 

 꼽추가 콩밭 속에서 말해왔다. 앉은뱅이는 두 줄기의 불빛이 밤하늘을 휘저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밝은 불빛은 앉은뱅이의 망막에 진한 어둠만 남겼다. 그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승용차가 물웅덩이를 건너며 경적을 울려대도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완충이가 그의 턱을 밀어붙이더니 승용차는 멎었다. 욕을 퍼부어 대는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꼽추는 바른쪽 콩밭에서 몸을 찰싹 붙였다. 사나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앉은뱅이는 옆으로 몸을 들더니 눈이 부신 얼굴로 사나이를 올려다보았다. 

 "이봐, 왜 그래?" 

 사나이가 외쳤다. 앉은뱅이가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뭐라고?" 

 "죽고 싶다구." 

 앉은뱅이가 말했다. 

 "내 위로 차를 몰아가. 나를 상관하지 말구." 

 그 목소리가 아주 작아 사나이는 앉은뱅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유나 알자.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를 알겠어?" 

 "알잖구. 나에게 입주권을 팔았잖아." 

 "그래, 당신이 십육만 원에 사갔지." 

 "나를 원망할 건 없어. 나는 시에서 주는 이주 보조금보다 만 원이나 더 준 거야."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앉은뱅이가 말했다. 

 "우린 그 돈으로 전세 들었던 사람을 내보낼 수 있었어." 

 "이 봐, 길을 비키게." 

 사나이가 말했다. 앉은뱅이는 얼굴을 돌렸다. 

 "전세돈을 빼주니까 끝이야." 

 "아파트 입주 능력이 없어서 팔아버린 것 아냐?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집이 헐린 걸 봤지?" 

 "봤어." 

 사나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우리집이 없어졌어." 

 앉은뱅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당신은 나에게 이십만 원을 더 줘야 돼." 

 "뭐라구?"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럴 수가 있어? 삼십 팔만 원짜리를 십 육만 원에 사다 이십 이만 원씩이나 더 받고 넘긴다는 건 말이 안 돼. 나에게 이십만 원을 줘도 이만 원의 이익을  보는 것 아냐? 더구나 당신은 우리 동네 입주권을 몰아사 버렸지?" 

 "비켜!" 

 사나이가 몸을 일으켰다. 

 "비키지 않으면 집어던질 테야." 

 "마음대로 해."  

 아주 짧은 순간 앉은뱅이는 정신을 잃었었다. 사나이의 구둣발이 그의 가슴을 차 버렸던 것이다. 앉은뱅이는 거듭 들어오는 사나이의 구둣발을 정신없이 잡고 늘어졌다. 앉은뱅이는 너무 약했다. 사나이는 앉은뱅이의 얼굴을 큰 주먹으로 몇 번 쥐어박더니 번쩍 들어 풀숲으로 내던졌다. 

 그는 거꾸로 쳐 박히듯 내던져진 앉은뱅이가 길 위로 기어 나오려고 꼼지락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방해물이 기어 나오기 전에 빨리 지나가야 했다. 

 그는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굽혔다.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의 명치 밑을 힘껏 차 왔다. 사나이의 큰 몸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콩밭에 숨어 있던 꼽추가 차안으로 들어가 있다 죽을힘을 다해 사나이를 차 버렸던 것이다. 

 "돈을 줄께!" 

 사나이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꼽추가 그의 입에 큰 반창고를 붙인 뒤였다. 몸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전깃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사나이는 꼽추가 앉은뱅이를 차 앞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불빛에 드러난 앉은뱅이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꼽추가 그의 얼굴을 씻어주었다. 앉은뱅이는 울고 있었다. 

 "내가 뻗는 꼴을 보고 싶었지?" 

 앉은뱅이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좀더 빨리 나왔어야 했어. 자넨 내가 뻗는 꼴을 보고 싶었던 거야." 

 "그만 둬." 

 꼽추가 몸을 돌려 걸으며 말했다. 

 "저 자를 차에 태워야 돼. 그리고 가방을 찾아야지." 

 "태워." 

 앉은뱅이가 따라오며 말했다. 사나이는 온몸을 뒤틀다 지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꼽추가 차 안으로 들어가 밤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켜져 있던 두 줄기의 불을 꺼 버렸다. 엔진도 껐다. 그는 운전석 밑에서 검정색 가방을 찾았다. 

 밖에서는 앉은뱅이가 사나이의 등을 받쳐 밀어 앉혔다. 꼽추가 나와 허리를 끼어 안아 일으켰다. 두 친구는 사나이의 몸을 더 받치듯 밀어 운전석으로 올려 앉혔다. 

 "나를 저자 옆에 앉혀 줘." 

 앉은뱅이가 말했다. 꼽추가 그를 안아 바른쪽 좌석에 앉혀주었다. 자신은 뒷쪽으로 들어가 검정색 가방을 열었다. 사나이는 보기만 했다. 

 "돈과 서류야." 

 꼽추가 말했다. 

 "보여 줘." 

 앉은뱅이가 말했다. 사나이는 앉은뱅이와 꼽추가 자기의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것은 벌써 팔아 버렸어." 

 앉은뱅이가 가방 안을 뒤적이면서 말했다. 사나이는 두 눈만 껌벅거렸다. 

 "잘 봐." 

 "우리 이름이 이 공책에 적혀 있어. 그런데 연필로 그어 버린 거야. 이건 팔았다는 뜻이야." 

 앉은뱅이가 쳐다보자 사나이가 고개만 끄덕였다. 

 "삼십 팔만 원에?" 

 꼽추가 말했다. 앉은뱅이가 돈을 세기 시작했다. 그는 꼭 이십만 원씩 두 뭉치의 돈만 꺼냈다. 

 "이건 우리 돈야." 

 앉은뱅이가 말했다. 사나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앉은뱅이가 뒷자석의 친구에게 한뭉치의 돈을 넘겨 주는것을 보았다. 앉은뱅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꼽추의 손도 마찬가지로 떨렸다. 두 친구의 가슴은 더 떨렸다. 

 앉은뱅이는 앞가슴을 풀어헤쳐 돈뭉치를 넣더니 단추를 잠그고 옷깃을 여몄다. 꼽추는 윗옷 바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꼽추의 옷에는 안주머니가 없었다. 

 돈을 챙겨 넣자 내일 할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앉은뱅이의 머리에도 내일 할 일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천막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통을 가져 와." 

 앉은뱅이가 말했다. 그의 손에도 마지막 전깃줄이 들려 있었다. 밖으로 나온 꼽추는 콩밭에서 플라스틱통을 찾았다. 그 친구의 얼굴만 보았다. 그 이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는 승용차 옆을 떠나 동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유난히 조용한 밤이었다. 불빛 한 점 없어 동네가 어디쯤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앉은뱅이가 기어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앉은뱅이는 승용차 안에서 몸을 굴려 밖으로 떨어져 나올 것이다. 그는 문을 쾅 닫고 아주 빠르게 손을 놀려 어둠 깔린 황톳길 위를 기어올 것이다. 

 꼽추는 자기의 평상 걸음과 손을 빠르게 놀렸을 때의 앉은뱅이의 속도를 생각하면서 걸었다. 동네 입구로 들어선 꼽추는 헐린 외딴집 마당가로 가 펌프의 손잡이를 눌렀다. 그는 두 손으로 물을 받아 입을 축였다. 그 손을 웃옷 바른쪽 주머니에 대어보았다. 앉은뱅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어오고 있었다. 꼽추는 앞으로 다가가 앉은뱅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앉은뱅이의 몸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났다. 꼽추가 펌프를 찧어 앉은뱅이의 얼굴을 씻어 주었다. 앉은뱅이는 얼굴이 쓰라려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런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가슴속에 들어 있는 돈과 내일 할 일들을 생각했다. 그가 기어온 황톳길 저쪽 끝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는 일어서려는 친구를 잡아 앉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왔을 때 꼽추네 식구들은 정말 잘 참았다. 앉은뱅이네 식구는 꼽추네 식구들보다 대가 약했다. 앉은뱅이는 갑자기 일어서려고 한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폭발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앉은뱅이도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불길도 자고 폭발소리도 자 버렸다. 

 어둠과 침묵이 두 사람을 싸고 있었다. 꼽추가 앞서 걸었다. 앉은뱅이가 그 뒤를 따랐다. 

 "살 게 많아." 

 그가 말했다. 

 "모터가 달린 자전거와 리어카를 사야 돼. 그 다음에 강냉이 기계를 사야지. 자네는 운전만 하면 돼. 내가 기어다니는 꼴은 보지 않게 될 거야." 

 앉은뱅이는 친구의 반응을 기다렸다. 꼽추는 말이 없었다. 

 "왜 그래?" 

 앉은뱅이는 급히 따라가 꼽추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이봐,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꼽추가 말했다. 

 "겁이 나서 그래?" 

 앉은뱅이가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꼽추가 말했다. 

 "묘해. 이런 기분은 처음야." 

 "그럼 잘 됐어." 

 "잘 된게 아냐." 

 앉은뱅이는 이렇게 차분한 친구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나는 자네와 가지 않겠어." 

 "뭐!" 

 "자네와 가지 않겠다구."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일 삼양동이나 거여동으로 가자구. 그 곳엔 방이 많아. 식구들을 안정시켜놓고 우린 강냉이 기계를 끌고 나오면 되는거야. 모터가 달린 자건거를 사면 못 갈 곳이 없어, 갈현동에 갔었던 일 생각 않나? 몇 방을 튀겼었는지 벌써 잊었어? 밤 아홉시까지 계속 돌려댔었잖아. 그들은 강냉이를 먹기 위해 튀기러 오는 게 아냐. 옛날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앞세우고 올 뿐야. 그런 델 찾아다니면 돼. 우린 며칠에 한번씩 집에 돌아가 여편네가 입을 벌릴 정도의 돈을 쏟아 놓아 줄 수가 있다구. 그런데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사범을 따라갈 생각야." 

 "그 약장수?" 

 "응." 

 "미쳤어? 그 나이에 무슨 약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완전한 사람은 얼마 없어. 그는 완전한 사람야. 죽을 힘을 다해 일하고 그 무서운 대가로 먹고 살아. 그가 파는 기생충약은 가짜가 아냐. 그는 자기의 일을 훌륭히 도와줄 수 있는 내 몸의 특징을 인정해 줄 거야." 

 꼽추는 이렇게 말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이야." 

 "그러니까, 알겠네." 

 앉은뱅이가 말했다. 

 "가, 막지 않겠어.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어쨌든." 

꼽추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무슨 해결이 나야 말이지." 

 어둠이 친구를 감싸 앉은뱅이는 발짝 소리 밖에 듣지 못했다. 조금 있자 발짝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잠든 천막을 찾아 기어가기 시작했다. 울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 밤이 또 얼마나 길까 생각했다. 

  

 교사는 두 손을 교탁 위에 얹었다. 그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끝으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생각해 보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 보라. 우주는 무한하고 끝이 없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 시간에 왜 굴뚝 이야기나 하고, 띠 이야기를 하는지 제군은 생각해 주리라 믿는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차렷! 

 반장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경례! 

 교사는 상체를 굽혀 답례하고 교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교실에서 나갔다. 

 겨울 해는 이미 기울어 교실 안이 어두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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